청송 최영진 강좌
  • 父祖와 禮制(부조와 예제)

  • 작성일 2015-01-23 19:36:05 | 수정일 2015-01-24 09: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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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공자님이 말씀하셨다.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은 바로 文王(문왕)이셨다. 왕계를 아버지로 하였고 武王(무왕)을 아들로 하였으니. 아버지는 創業(창업)하시었고 아들은 그것을 발전 시켰다. 武王이 태왕 왕계 문왕의 기업을 계승하여 한번 갑옷을 입고서 天下를 차지했지만, 몸은 천하에 드러난 명성을 잃지 않아 존귀하기로는 천자가 되고, 富로는 천하를 소유하시고 종묘에 제사를 모시고 자손을 보존 하셨다.

    해설: 위대한 덕은 순임금처럼 자신이 지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이상적인 것은 代代로 이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다. 문왕은 아버지가 닦아 이룩한 왕업을 이어 받아 발전시켰고, 다시 자기가 못 다한 일을 아들이 이룩하여 천명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그는 누구보다도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周室(주실)은 그 왕업이 실질적으로 세워지기는, 고공단보(古公亶父) 즉 태왕이 융적의 침입을 피해 빈 땅에서 빈 땅 백성들과 함께 기산으로 옮겨와 성곽과 궁실을 건설하고 국호를 周라고 정한 때부터이다. 古公(고공)은 계륵의 아들 창의 비범함을 인정한데다가 그의 商朝(상조)에 대한 정복의 뜻을 맏아들 태백이 거부하자, 결국 계륵에게 물려 주었고 이에 계륵은 父의 유지를 이어받아 왕업의 기틀을 잡았다. 文王(창)에 이르려 周의 세력은 크게 팽창하였고 武王(무왕)에 이르러 太公望(태공망)의 도움으로 商나라를 멸망하고 천하를 차지 천자의 位에 올라 鎬(호)에 도읍을 정했다.

    무왕이 한번 갑옷을 입고 상나라 주왕을 멸하고 천하를 차지했지만, 몸은 천하에 드러난 명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무왕의 易姓革命(역성혁명)을 가리킨 말인데, 그 말은 堯(요) 舜(순) 禹(우)가 순수한 德力(덕력)으로 帝位(제위)를 선위 한 것과 달리 무력으로 천하를 차지한 사실이다. 때문에 무왕은 德이 불안전했음을 인정하고, 商朝(상조)의 폭정과 혼란을 바로잡고, 그 부모의 유업을 계승 발전시킨 공로만을 칭송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父祖(부조)가 일으킨 사업을 자손이 계승 발전시키는데, 전대와 후대간의 육체적인 생명의 연대를 넘어 또 하나의 다른 생명의 유대가 뻗고 있다는 것과 자손이 父祖의 사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그것이 孝를 실천하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숙어 낱말 풀이. 父祖(부조) :아버지와 선조.   禮制(예제) : 예법과 제도

    自己誠實(자기성실) : 자기 스스로가 정성스럽고 참됨  自暴自棄(자포지기) : 자기 스스로를 내버려 돌보지 않음   易姓革命(역성혁명) : 성을 바꾸어 왕조를 바꿈

    2)武王이 노년에야 天命을 받은지라 周公이 文王 武王의 德業(덕업)을 이루어 太王(태왕) 王季(왕계)를 왕으로 追尊(추존)하시고 위로는 先公을 제사 하시되 천자의 예로써 하였다. 이러한 예법은 제후 대부 및 士와 庶人(서인)에게도 통용되었으니 일테면 아버지가 대부이고 아들이 士이면은 葬禮는 대부의 禮로하고 제사는 士에 해당하는 禮로써 지내며 아버지가 士이고 아들이 大夫이면은 장례는 士의 禮로 장례하고 제사는 대부의 禮로 지낸다. 期年喪(기년상)은 대부에게까지만 이르고 3년 상은 庶人(서인)에까지 이르니 부모의 상은 귀천의 분별없이 하나이다.

    숙어 낱말풀이. 武王(무왕) : 중국 周나라의 첫 왕 성은 희 이름은 발이다. 문왕의 아들로 殷(상)나라를 멸망시키고 周 王朝(왕조)를 열었다. 호경에 도읍하였으며 봉건제도를 창설하였다. BC(1122~249)

    周公(주공) : 周나라의 정치가 문왕의 아들이며 무왕의 동생으로 주나라의 정치제도 예법을 제정하여 주나라의 기초를 세우신 현신이다.

    追尊(추존) : 돌아가신 분을 미루어 높이고 추모함.

    庶人(서인) : 일반 백성 庶백성서. 期年喪(기년상) 상복을 1년 입는 상   

    해설: 무왕의 뒤에 나이어린 성왕이 즉위하였으나 주공이 攝政(섭정)하여 왕업을 발전시켰다. 주공의 이름은 旦(단)이다. 그는 文王의 아들이며 武王의 동생이다. 그는 특히 周나라의 禮樂文物(예악문물)을 크게 혁신 창제하여 주나라 문화를 크게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사람이다. 공자님은 항상 西周盛時(서주성시)의 문화와 예법을 憧憬(동경)하고 그 부흥을 염원하면서 주공의 업적과 인물을 숭상하고 그를 본받고자 하였으나 나라를 맡겨준 군주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년에 한탄하시기를 “나는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주공은 주나라 터전을 이룩한 조상들을 임금으로 追尊(추존)하고, 古公亶父(고공단보)와 季歷(계력)을 태왕과 왕계로 부르게 한 것이다. 先公(선공)이란 태왕의 아버지 무왕의 高祖(고조)인 組紺(조감)에서부터 后稷(후직)에 이르기까지 十三代에 걸치는 周室(주실)의 宗統(종통)의 조상을 가리킨다. 

    性理學者 靑松 崔 榮辰

    청송 haenam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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