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15)

  • 작성일 2009-06-22 12:59:00 | 수정일 2009-07-07 20:10:08
  • “이봐. 3천에 초범이면 별로 오래 살지 않아. 아마 집행유예로 빠질 거야. 초범이면 원래 형이 좀 후하거든. 그런데 좀 아깝네. 초범 기회라면 나 같으면 몇 억 해먹겠다. 그래봤자 3년인데 말이야. 초범이란 기회는 면죄부다. 라는 생각을 했어야지. 미련하기는.”

    사내는 창석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가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나이에 맞지 않은 표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럼 그쪽은 얼마나 해먹었는데요?”

    살짝 화가 난 창석이 물었다.

    “나? 나야 엄청 크게 해먹었지. 변호사 빵빵한 놈으로 샀으니까 금방 나갈 거야. 사기 건은 말이야. 합의 열심히 하려는 척 선처의 모습만 보이면 판사들이 좋게 봐주거든. 한 100사람 사기 처먹고 50명 정도만 합의 봐도 선처했다고 믿는 게 판사들이야. 하하.”

    사내는 자랑스럽게 창석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그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휴~ 답답하네요.”

    마음이 열린 창석이 속내를 살짝 비췄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내의 충고가 이어졌다.

    “이봐! 우리 같은 경제사범들도 자기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일단은 버는 족족히 쓰지 말고 모아둬야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정말 말 그대로 사기꾼 새끼 돼서 평생 사기만 치면서 살아가야 되는 거야. 그리고 해먹으려면 크게 좀 해먹어. 어차피 징역 살아야 하는 사업인데, 징역 무서워서 짜 자라게 해먹고 고생만 하느니 크게 해먹고 좀 쉬다 나온다는 생각을 하는 게 좋지 않나? 어차피 몇 천 억 대를 해먹어도 정상 참작이라는 것이 있는 건데 말이야. 자네 아직 많이 배워야 갰어. 하하하. 만약 자네랑 구치소에 가서도 같은 방 쓴다면 내가 안에서 범털로 있게 해줄 테니 걱정 말게. 이것도 인연인데. 하하하 아! 소개가 늦었군. 난 그냥 편하게 장 사장이라고 불러.”

    “사장님! 오래 기다리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사우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석이 장 사장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꺼운 금 목걸이와 반지가 장 사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 실장. 왜 이렇게 늦어? 젊은 사람이.”

    “하하! 죄송합니다. 이야~”

    장 사장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창석은 반신욕을 하고 있는 그의 몸을 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허허 자네 왜 이래? 징그럽게.”

    “사장님 나이는 40대 이신대 몸은 20대 청춘보다 훌륭하십니다.”

    칭찬이 거북하지 않은지 장 사장의 어깨가 조금 펴졌다. 창석의 시선이 향하는 부위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하하. 그러니까 자네도 운동 좀 해. 마누라한테 사랑받으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한참 운동 이야기로 장 사장이 열을 내었다. 창석은 ‘아! 네.’ ‘정말요?’ ‘그렇군요.’ 라는 말을 되풀이 하며 열심히 경청했다.

    장 사장이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주위를 살펴본다.

    “이봐. 우리 조용한 곳으로 좀 옮길까?”

    ‘그렇지! 슬슬 이야기 나올 때가 됐지.’

    창석이 재빨리 한적한 곳을 찾았다.

    “수증기 탕은 사람들이 잘 안 들어가니 그곳에서 이야기 하시죠.”

    “그래. 가세.”

    장 사장이 앞장섰다. 창석이 그 뒤를 쫒아 수증기 탕으로 들어갔다. 방금 증기들이 뿜어져 나왔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가 그들을 덮쳐왔다. 통나무로 된 의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 가장 가까운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난 일단 인천으로 넘어가서 여권하고 신분증 작업을 할 거야. 자네는 그 사이 정선에 먼저 들어가서 준비 좀 하고 있게.”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장 사장의 입이 빠르게 움직였다.

    “신분증 하고 여권이요?”

    창석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되묻자 장 사장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래. 정선에서 그 카드들을 모두 소비 할 수 없어. 그래서 우리 마지막 작업은 홍콩에서 해야 되는데 신분증과 여권을 위조해서 들어갈 거야.”

    “신분증하고 여권위조. 정말 믿을 만 한 겁니까?”

    “신분증은 중국에서 위조하고 여권은 우리 한국 사채업자들한테 장당 50만원씩 사면돼. 한국 사채업자들이 여권대출 이라고 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장당 20만원씩 사들이거든. 그걸 중국 업자에게 넘길 때 50만원에 넘기지. 여권은 위조하는 게 아니라 사진만 바꿔 끼는 거야. 그리고 그 여권 신분으로 신분증을 위조하는 것이고. 신분증은 인천항에 들어오는 보따리상들에게 맡기면 다음 배 들어오는 날짜에 정확히 가져다주지. 중국 대련으로 배가 가는데 그곳에 위조하는 업자들이 참 많거든.”

    정 사장의 자세한 설명에 창석은 생각을 정리했다. 증기가 가라앉았다. 다시 한 번 증기가 뿜어져 나올 때가 되어서야 그가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장님. 정선은 그렇다 치고 홍콩까지 가는데 정말 안전 할 까요?”

    미리 예측을 한 질문이었는지 장 사장이 곧바로 말했다.

    “이봐. 홍콩으로 바로 들어가는 게 아니야. 홍콩으로 가려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인천공항이나 다른 공항들은 검문이 엄청 빡세거든. 우린 인천항에서 배편을 이용해서 중국으로 넘어간 다음 그곳 브로커들을 통해서 홍콩으로 넘어가는 거야. 브로커들이 이미 현지에서 우리 카드 긁어 줄 골프장이나 명품매장들 알아봐 놓고 있네. 복사카드인지 알면서도 긁어 주는 곳들이 많이 있어. 대신 긁는 금액에 30%의 수수료가 들어간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우린 브로커들에게 줄 돈만 정선에서 뽑으면 되는 거야. 나머지는 안전하게 홍콩 가서 마무리 하는 거지.”

    장 사장의 치밀한 계획에 창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선에서는 어떻게 현찰을 만들 수 있다는 건지?”

    “전당포지. 정선에는 전당포들이 많이 있잖아. 거기서 카드깡을 하는 거지. 자네는 정선으로 먼저 내려가서 우리가 있을 숙소랑 현찰을 가장 많이 보유한 전당포 열군데만 알아봐. 우리 여기서 30억은 만들어야 돼. 브로커들에게 들어가는 돈만 해도 수십억이라고. 참! 우리 카드 매입비용은 5:5야.”

    장 사장이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창석은 의문이 모두 풀리자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벌써 왁꾸를 그렇게 완벽하게 짜놓으시다니. 내일 바로 출발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자네는 역시 빨라서 좋아.”

    서로의 자화자찬 이어졌다.

    ‘그래 이번 건 크게 터트리고 이젠 이 바닥에서 벗어나는 거야. 아예 한국을 떠버리는 것도 괜찮겠지. 내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 곳. 별로 미련도 없다.’

    (2년 전)

    “곽형석 형님 동생 되시죠?”

    “네. 누구세요?”

    “전 형석형님 아우 상수입니다. 형님께서 살해당하셨습니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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