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남성리 전복 가두리 피해 현장을 찾아서

  • 태풍 볼라벤이 물러간 28일. 남성리 해안에 일단의 여성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었다. 등산을 가는 것처럼 배낭을 멘 사람, 손에 양동이를 든 사람,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눈에 띄는 장구가 없는 사람, 모두 같아 보였으나 조금은 다른 행색의 사람들이었다. 기자는 멀찌감치 앞서 가는 그들의 뒤를 부지런히 쫒았다. 해안선은 생각보다 길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바위들을 피해 조심스럽고 바쁘게 걸었다.  


    남성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태풍 피해의 잔해들이 많아 졌다. 처음에는 좌초된 전복 가두리 몇 개가 보였다. 전복 가두리는 서로 엉켜 앞과 뒤, 위와 아래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커다란 뱀이 서로 엉켜 있는 것처럼 서로 달라붙어 뒤죽박죽이었다.  


    기자가 앞서가는 주민을 놓친 사이 뒤에서 해양경찰 몇이 나타났다. 기자는 그들이 어가들의 피해상황을 조사하러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경찰은 전복 무단 채취를 단속하러 나온 것이었다. 경찰은 해안가에서 전복을 줍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안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경찰의 단속은 쉽지 않았다. 전복을 줍고 있는 사람들이 경찰을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지못해 철수하는 척 하다가 경찰이 사라지면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농부가 참새를 쫓으면 잠시 물러났다가 농부가 사라지면 다시 벼로 달려드는 것과 흡사했다.  



    그런데 여기까지의 모든 상황은 서막에 불과했다. 좌측으로 굽은 해안선을 따라 돌자, 높은 바위에 좌초된 전복 가두리가 눈에 띄었다. 마치 노아의 방주 같아 보였다. 높고 가까워서 그런 것인지, 전복 가두리가 뒤틀려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히 크게 보이는 가두리 양식장이었다. 이 가두리 양식장은 다음부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피해 현장의 시작점 이었다. 이곳에서부터 붉은 색의 가두리 양식장이 해안선을 빙 둘러 꼬리를 물었다. 시야에서 아스라이 보이는 저 먼 곳까지 빽빽하게 자리를 잡았다. 태풍에 밀려 온 가두리 양식장이 마치 바다 전체에 그물을 친 형국이었다. 그 행렬이 너무 길어, 그 행렬을 따라 끝까지 간 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해 보였다. 카메라의 눈으로 끝을 조망하는 것을 몰라도 내가 그곳까지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도박 같아 보였다. 


    바닷물이 빠진 해변은 넓어 보였다. 해변의 끝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이 가로막고 서있고, 태풍에 떠밀려 온 가두리 양식장은 절벽에 막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것들이 해안가에 긴 행렬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현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변에 노출된 전복이 상하면서 나는 냄새였다. 전복이 상할 때는 다른 해산물에 비해 악취가 심하단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악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의 숫자도 이전 장소에서 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다. 몇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전복 가두리에서 떨어진 전복을 줍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인근에 사는 주민이거나 해남 사람, 내지는 인근 시군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별 수확 없이 해변을 뒤지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늦게 도착했거나 바다 일에 서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양동이에는 전복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바다 일에 익숙한 어민들이거나 아니면 남들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해양경찰의 단속이 시작됐다. 그런데 전복 채취에 나선 사람들이 쉽게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상할 건데 줍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전복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의 단속 의지는 강경했다. 경찰이 ‘절도죄’를 운운하자 처음에는 물러나려 하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 둘 경찰이 진입한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는 남성리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기자도 그들의 뒤를 따라 피해 현장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앞서 걷는 이가 있었다. 이 마을 주민 같았다. 노인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뾰족뾰족 튀어나온 바위틈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한편으로는 익숙한 길을 걷는 것처럼 걸어갔다. 노인은 전복이 가득 찬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피해 현장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기자는 사진을 찍기 위해 피해 현장을 되돌아보았다. 기자에게 피해 상황을 잘 전해달라고 부탁하던 전복 양식장 피해 어민의 모습이 보였다. 피해 현장에서 두 손 놓고 난감해 하던 그였다. 그는 피해 현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연신 담배만 피워댔었다. 그는 지금 바닷물과 해변이 만나는 지점에 우두커니 서서 무슨 생각에 골똘히 잠겨있다. 그의 모습은 전복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 해양경찰과 숨바꼭질을 하는 전복 채취객들과 대비되어 한층 더 어둡게 보였다.  


    되돌아오는 길에 경찰이 처음 단속을 시작한 장소를 지나쳤다. 그런데 경찰의 단속에 물러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전복을 줍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무리들이 피해 현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경찰이 단속한다는데 어디쯤 있느냐고 묻고는 전복을 줍기 위해 피해 현장으로 향했다.

     

    <윤승현>

    • 관리자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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