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가 '3D'를 ‘쓰리디’로 읽지 않고 ‘삼디’로 읽었다가 일부 정치인과 누리꾼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이는 김종인 옹이었다. 김 옹은 문 후보에 대해 “국가 경영은 ‘3D프린터’를 ‘삼디프린터’라고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잠깐 실수로 잘못 읽었다고 하기엔 너무도 심각한 결함”이라고 문 후보를 비꼬았다. 이어 안철수 후보도 가세했다. 안 후보는 "용어에 대해 전문가들 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발음이 있다"며 "일반적으로 누구나 보면 '쓰리디 컴퓨터'라고 읽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후보 공격 대열에 동참했다.
필자는 이 사건이 잠깐 시끄럽다 며칠 안에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삼디’ 발언의 파장은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번져가는 양상이다. ‘쓰리디’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과 ‘삼디’로 읽어도 괜찮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과연 ‘3D'를 ’쓰리디‘로 읽어야 전문가이고, 유식하며, 대통령 후보 자질이 있는 것일까? 필자의 대답은 단언코 ’아니다‘이다. '삼디’와 ‘쓰리디’의 논쟁은 국어 안에 침투한 외계어와 한글과의 충돌이며 맹목적 영어 사대주의가 나은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순화되지 못한 외래어가 한글을 오염시키는 과정일 뿐이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씨의 탄핵을 인용하면서 일반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판결문을 작성했다. 그런데 우리는 헌법 재판소가 어려운 법률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여 헌재를 법률가 집단이 아니라고 하거나, 유식하지 않다거나, 헌법재판관의 자격이 없다거나 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요구하고 있다.
전문용어의 남발은 전문가 집단과 비전문가 집단의 차이를 부각함으로서 전문가 집단의 현학적 허세를 충족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나, 요즘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전문 지식들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필부집단의 허세일 뿐이다.
사실, 필자는 안 후보가 개발한 v3를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사용해가며 컴퓨터를 시작했다.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서버와 각종 소프트웨어를 다뤄왔지만 ‘3D' 프로그램을 지금도 '삼디‘라고 읽는다. 젊은 시절 '3D'를 ’쓰리디‘라고 읽으면 폼나게도 보였지만 '삼디’ 발음이 편하고 ‘쓰리디’라고 읽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였다.
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평면에 재현해내던 사물을 입체적으로 재현해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발전하는 과학의 요소에 ‘3D'도 존재한다. '3D'가 논쟁적 요소가 된 것은 그만큼 '3D'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3D'를 ’삼디‘라고 읽는다고 하여 ’3D'가 아닌 것도 아니거니와 ‘3D'를 ’쓰리디‘라고 하여 '3D'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발음의 문제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협량한 이들의 소모적 논쟁일 뿐 지적인 논쟁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다만, 우리가 대한민국 사람이고 한글을 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3D’를 ‘3D'를 ’삼디‘라고 읽는다고 문제시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기부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