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4일, 해남군 옥천면 김 모 씨가 삶의 고비에서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김 씨의 죽음은 오롯이 자신의 의사라기보다는 철옹성보다 강고한 해남군 행정의 민낯 앞에서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자 부당함에 대한 마지막 항거였다.
김 씨에게는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권리침해에 대해 인내하고 살던가, 불을 들고 해남군청에 뛰어들던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 외에는 별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런데 마음이 모질지 못한 김 씨는 자신의 유서가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남긴 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사실, 해남군에서 김 씨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해남군 고위공무원들의 민원인에 대한 막말’,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군의원에 대한 협박성 문자’, ‘기자에 대한 협박 문자’ 등 해남군 일부 공무원들의 안하무인 행태에서 찾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군민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군민에게도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해남군 공무원이 변변한 배경도 없는 농부를 얼마나 무시했는가는 불물가지이다. 김 씨의 미망인 양 모 씨의 주장과 직간접 증거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 씨의 사건은 해남군 행정의 부정적 요소의 총체를 노정하고 있다. 그것은 공무원의 복지부동, 편파적 민원처리, 민원인 모욕, 자기모순 그리고 유착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 등이다.
김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해남에는 김 씨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었다. 김 씨가 권리 구제를 위해 해남군을 찾았을 때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공무원 한 사람이 없었다. 매달 꼬박 꼬박 세비를 챙기는 군의원은 많아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군의원은 없었다. 해남군 행정의 최고 책임자 또한 김 씨에게는 먼 나라 군수였을 뿐이었다.
김 씨에게 해남은 어떤 곳이었을까? 김 씨에게 해남사람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해남의 공무원은 김 씨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우리는 김 씨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는 않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