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환 해남군수의 구속으로 인한 해남군수 궐위 상태가 300일에 이르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양재승 부군수가 해남군정을 이끌어 왔으나, 양 부군수는 ‘해남군수의 인사비위 등에 동조했거나 묵인했다’는 의혹 등으로 ‘해남군민대책위원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즉, 박 군수는 영어의 몸이 되고 부군수는 군수의 범죄에 묵시적 혹은 암묵적 공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군수궐위 상태가 이어져 온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박철환 군수와 정치적 대척점에 서있는 정치인과 일부 군민ㆍ 단체 등이 박 군수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으나 그 효과와 파장은 미미하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장본인인 박 군수는 자진 사퇴 뜻이 전혀 없어 보인다. 전언에 의하면 오히려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 군수의 구속과 장기간의 군수 궐위 상태를 지켜보는 해남군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우리가 예상하듯 지역주민들의 생각은 여러 갈래로 쪼개져 있었다. 혹자는 ‘박 군수에 대한 확실한 처벌과 자진 사퇴’를 원했고, 혹자는 “박 군수가 안 됐다”며 동정론을 펴기도 했다. 또 어떤 주민은 “있으나 마나한 군수 새로 선출하지 말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출하면 될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해남 군민들은 군수의 부재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해남군민들의 이런 반응은 선거 때 한 약속을 어기고 매번 영어의 몸으로 전락하는 군수들을 경험하면서 해남군민들에게 생긴 일종의 내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필자는 해남 정치인들이 영어의 몸이 될 때마다 매번 같은 의문을 가졌다. 해남군민들은 왜, 매번 친교도소적인 정치인이나 행정가를 선택할까? 소위 정치적 케미가 같아서 일까, 아니면 선택의 결과로 후한 급부가 주어져서, 아니면 후보를 잘 검증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숨겨진 이유 때문에, 혹 가장 정치적이라는 호남지역에서 가장 정치적인 선택이 이런 것일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지만 확실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조셉 드 메스트르의 주장을 인용해봤다. 그의 주장을 해남에 적용한다면 “해남군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군수를 가진다”라는 표현이 된다. 이 표현이 현재 해남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절절한지는 의문이지만 공식적으로 딱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하여 구속 상태에서 52일 간이나 사퇴하지 않고 버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버티기 끝판왕’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박철환 해남군수의 버티기는 그 보다 6배가 많은 300일 가까이 된다. 이 정도면 ‘버티기의 달인’ 내지는 ‘버티기의 고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리가 인정되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버티기는 당연한 권리일 수도 있다. 혹시 모를 대법원 무죄판결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권리를 위해 표류하는 군정을 볼모로 버티는 박 군수의 행태는 형사법에 의해 처벌받고 영어의 몸이 된 형사 잡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초자치단체를 이끌었던 리더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책임감도 없고, 저열하며, 품격이 없다. ‘칼 던지기’, ‘기자 폄하 발언’ 등으로 설화에 올랐던 딱 그 수준이다.
우리는 박철환 해남군수에게 요구한다. 8만 해남군민에 대한 미안함과 군정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자신의 유무죄를 떠나 군정공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군민들의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준 것을 통감하고 군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한때나마 해남군정을 책임졌던 자치단체의 장으로서 군민에게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길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8만 해남군민의 자존감을 지속적으로 짓밟는 행위자로, 자신의 범죄행위와 해남군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파렴치한 범죄자로 분노한 군민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