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조국 대전’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조국 대첩’이라고 말한다. 소위 기레기라 불리는 문제의 언론과 통치권을 위협하는 검찰의 무모한 도박, 그리고 양아치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 야당으로부터 조국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조국 대첩’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한 지난 8월 9일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언론은 자한당을 비롯한 야당과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이후 27일까지 131만 건의 조국 관련 단독 보도를 쏟아냈다(뉴스민 기사 참조). 일개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증 기사로 보기에는 경이적인 숫자였으며 논조 또한 광기를 숨기지 않았다. 야당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면 언론이 이를 받아쓰고,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면 야당 의원이 이를 근거로 다시 의혹을 부풀리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기사가 의혹을 낳고, 의혹이 또다시 기사를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여기에 검찰이 가세하면서 조국 후보자에 검증은 검증 차원을 넘어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의 싸움으로, 또 검찰과 진보진영의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조국 후보자에 대한 도를 넘는 공격과 검찰의 개입은 진보진영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의 데자뷔였다. 절대 물러서거나 밀리면 안 되는 싸움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진보는 결집했다. 9일 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재가함으로써 진보진영이 일단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국 후보자 임명에 반발하는 국민도 적지 않아 조국 문제는 당분간 정국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조국 대첩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언론의 모습은 먹이를 물어뜯으려고 덤비는 하이에나이거나 이빨을 드러내고 상대를 물려고 으르릉 거리는 미친 개였다. 1개월여 동안 쏟아진 기사 131만 건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이들의 목적을 설명해주고 있다. 오죽했으면 여당의 대변인이 기자 면전에서 ‘기레기’라고 했을까. 그들은 최 일선에서 조국 후보자를 공격하는데 앞장섰으며, 막장 야당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했다. 이는 우후죽순 늘어난 매체의 양적 팽창에도 원인이 있지만, 야만적인 정의감에 불타서 천지 분간 못하는 기자들의 망동과 이 사태를 배경으로 이익을 챙기려는 언론사의 사악함에도 원인이 있다. 가장 압권은 조국 후보의 부실 기자회견에 대한 언론사의 변명이었다. 기자들의 부실 검증에 대해 논란이 일자, 언론사들은 기자들이 3시간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쏟아낸 기사는 어떻게 썼단 말인가. 그냥 베꼈다는 변명 말고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동안 변하지 않은 검찰의 행태도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검찰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임명하려는 법무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리고 수사에 관련 정보는 언론을 타고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조국 일가에 죄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안과 사안을 연결해 마치 조국 일가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보도되었다. 영화에 쓰이는 몽타주기법과 같다. 또 검찰은 조국 후보자의 청문회가 끝나는 시점에 부인 정경심 교수를 사문서 위조(표창장)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야당 의원들에게는 검찰의 정보가 사전 전달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러니까 야당의원들과 결탁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또 있다. 현재 동양대 총장의 학력 위조 여부가 핫이슈가 된 상황이다. 자격 미달인 사람이 자격을 사칭해 표창장을 수여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검찰이라면 정경심 교수 기소 이전에 동양대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었어야 한다.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검찰은 대통령의 통치권에 대한 도전을 시도했으며, 개혁의 칼날에서 유리한 고지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 같다.
조국 대첩에서 ‘공정성’이란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 공정이란 개념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불공정을 경험한 국민들이 최우선적인 개혁과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야당이나 언론에서 조국 후보자의 가족이 특권층으로 특혜를 많이 입었다고 공격하고 있다. 이는 개인주의적이고 손해라는 개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 층을 겨냥해 ‘공정성’의 문제를 부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공정성은 모든 국민에게 민감한 문제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보다는 순전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의 불공정한 행위로 인해 손해를 보았다는 감정, 잠재적 경쟁자에게 밀렸다는 감정, 내가 볼 혜택이 상대에게 돌아갔다는 감정 등 감정적 요소들이 크게 작동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공정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물론 공정과 정의의 관념이 관통한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에서 기회가 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기회를 잡지 못한 모든 국민을 공정이라는 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어찌 보면 공정의 게임 룰은 가진 자와 좀 더 가진 자의 다툼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조국 일가가 특별히 공정성을 훼손하여 혜택을 입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조국 후보자에 공격은 대부분 가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도 후진적 연좌제도의 악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인이 당하면 억울한 것이 연좌제이고, 남이 당하면 당연한 것이 연좌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엄연히 연좌제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연좌제의 폐해를 알기에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경우는 자녀가 마약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의 언론도 그 문제를 대통령의 능력과 결부시키지는 않았다. 조국 후보의 자녀를 공격하던 장제원 의원은 하루 만에 아들의 음주운전과 운전자 바꿔치기 문제로 곤경에 처했다. 사실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장제원 의원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자식이 부모 바람대로 성장하고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제원 의원의 잘못은 역지사지 하지 못하고 조국 후보자의 딸을 무차별 공격한 데 있다. 장제원 의원의 인성이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이다. 자녀의 문제는 남의 자녀라고 해서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잊었던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장 큰 약점은 사법현장에서 실무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학자이기는 하나 국민의 권익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심한 부분까지 헤아리지 못한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이것이 현직 변호사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조국 법무장관의 임명을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조국 법무장관이 사법의 일선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댐을 지키는 일은 무의미하다. 공정이 댐을 지키는 일이라면 쓰나미는 나라와 민족, 법을 무시하는 거악이다. 내게 불리하다고, 내게 조금 손해가 있다고, 내 의견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내가 맘에 안 든다고 거악에 대한 경계를 허문다면 공정은커녕 민주주의 토대조차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인군자나 성직자를 법무부 장관 후보로 찾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시대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흠결은 있지만 큰 흠결이 없으며,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할 만한 인물을 찾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조국 이외에 다른 후보는 없느냐고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조국 후보자가 법무장관이 되지 못하면 후임자가 법무장관이 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작금에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말이다. 이래저래 시간만 허비하다 검찰 권력만 키워놓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하다. 개혁은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더디게 진행되지만 오늘보다 나아지는 것이 개혁이다. 우리 모두 냉정을 찾고 우리와 우리 후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응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