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정천.
‘대한민국은 오후 6시 이후에 가장 많은 현찰이 소비된다.’
밤의 대한민국. 이곳에서 교훈과 같이 전해지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하여도 돈과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화류계란 공간만큼은 영원히 존재 한다.’ 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인 성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지쳐있는 시간. 어떤 이들은 소주로 회포를 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지친 몸의 욕망을 환락으로 해소하려는 이들을 상대로 기생하고 있다.
난 그들에게 환락을 제공한 여자들에게 보호라는 명목으로 착취를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나와 같이 환락의 세상인 화류계에 입문하여 기생하려 하는 이들을 철저하게 응징한다.
오늘은 한 아가씨가 날 찾아왔다. 대학생인 그녀,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며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의 이야기는 첫 화류계에 입문을 하는 다른 그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만 일을 할 거라는 이야기부터 힘드신 부모님을 위해 학비를 조금 보태고 싶다는 이야기, 어학연수를 가고 싶은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잠깐 일을 한다는 너무나 흔한 핑계들.
이곳에 처음 들어오는 그녀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 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녀들의 눈빛을 통해 그것들을 쉽게 파악한다. 화려한 삶. 바로 그것이다.
난 그녀에게 한 달에 최소 500만원의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로 유혹을 안겨준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자신의 입장정리를 하던 그녀가 다음이야기를 기다리며 뚫어져라 날 응시하고 있다.
돈. 그것의 욕심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녀에게 더욱 유혹적인 이야기들을 꺼낸다. 잘만 하면 괜찮은 손님을 만나 수천, 수억의 돈을 한 번에 벌 수 있다는 이야기, 손님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을 이곳에서는 공사라 부르며, 공사를 쳐서 인생의 역전을 노려보라는 농을 던지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인다.
그녀에게 200만원이라는 현찰을 건넨다. 표정이 굳어진다. 지금 어떠한 생각들이 그녀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젠 우린 한 식구잖아. 식구끼리 이 정도는 오빠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거 빚 아니니까 그냥 넣어둬. 오빠도 고향에 동생만한 여동생이 있어서 남 같지 않아서 그래. 22살이라고 했었나? 오빠 동생이 오빠랑 5살 차이이니까 동갑이네.”
그녀의 가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돈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의 말이 신뢰가 가는 지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다.
됐다! 이제 그녀는 이곳에 몸을 담고 살아가며 이곳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이곳에서 동생의 몸은 상품이야. 오빠에겐 소중한 동생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상품이 되어야 돼. 그럼 돈이 돈처럼 보이지 않을 거야. 어느 순간부터는 그 돈들이 휴지조각처럼 여겨 질 테니까.”
돈. 이곳에서는 아무 감정도 없는 종잇조각을 벌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여러 사내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여러 사내의 살점을 탐닉 한다면 직장생활을 하는 다른 사람들 보다 몇 배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내들의 성 욕구를 충분히 자극 시킬만한 그녀의 풍만한 몸매와 앳된 얼굴은 이곳에서 꽤 많은 돈을 벌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의 생활을 청산하려 할 것이다. 처음 일을 하게 되면 모두가 돈을 모으는 것에 열심이다. 그리고 잠시 이곳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곧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곳에서 길들여진 소비 욕구를 밝은 세상에서 채우기란 너무나 어렵다.
예쁜 옷과 화려한 시계, 멋진 자동차. 그리고 잘만 하면 남자들에게서 엄청난 돈을 한 번에 받아 낼 수 있다는 기대감과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기에…….
그녀의 몸이 상품이 되는 순간 원하는 것들은 너무나 쉽게 손아귀에 들어온다.
“오늘은 그냥 언니들 출근 할 때 까지 오빠랑 밥이나 먹고 있다가 인사나 하고 내일부터 출근해. 친구들하고 술 한 잔 하고 푹 쉬어. 이제부터 친구들과 함께 술 한 잔 할 시간도 별로 없으니까. 참! 우리도 주 5일 근무야. 노동법은 지켜야지. 일어날까? 하하!”
그녀는 억지웃음으로 날 따라나선다.
악마의 놀이터. 이곳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숨겨진 더러운 욕망. 누구에게도 말 할 수없는 더러운 욕구를 해소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이곳에 새롭게 들어오는 이들은 많아도 이곳을 벗어나는 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곳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을 위장한 더러운 욕망만이 존재할 뿐…….
(곽창석)
“남의 돈을 가지고 망하면 사기꾼이고 남의 돈을 가지고 잘 살면 사업가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철학이다.
난 이름이 두 개다.
주민등록증상의 이름인 곽창석. 그리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현진.
내 주민등록증상의 이름은 사라진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이 바닥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유현진이란 존재하지 않는 나를 알고 있을 뿐이다. 즉 내 삶은 모두 거짓이다. 그렇다고 그것에 괴로워 할 필요는 없다. 유현진이란 존재 곁에 있는 사람들 역시 존재하지 않는 이름으로 서로를 알고 지내며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기에.
서로가 기생하고 그로인하여 서로가 공존을 한다.
오늘 한 사람이 찾아왔다. 행색이 초라하다. 아마도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날 찾아온 듯 얼굴 표정이 어둡고 굳어 있다.
“아이구! 어렵지만 현명한 선택을 하셨어요. 사장님. 딱 오 분만 아무 애기 하지 마시고 설명 한번 들어보세요. 그 뒤에 질문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0대 중반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나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사장님도 한몫 잡고 이젠 깡통대신 골프채 잡으셔야죠. 일단 한건 올릴 때 마다 통장으로 프로테이지 깔끔하게 쏴드립니다. 우리 넉넉잡고 3개월만 고생합시다. 참! 식사는 하셨어요? 일단 뭐라도 좀 먹고 정신 차리고 이야기 합시다.”
날 따라 나서는 사내. 그는 통장의 잔고를 생각하며 달콤한 상상을 할 것이다.
난 사내의 명의로 담보 물건작업을 하게 된다. 대부분 잘 팔리지 않는 건물의 건물주가 우리에게 담보를 제공한다. 그럼 난 건물의 명의를 사내의 명의로 변경한 뒤 은행에서 10억이라는 돈을 대출 받는다. 첫 작업은 담보를 제공해준 사람에게 대부분의 수익이 돌아가지만 다음 작업부터 나에게 많은 돈이 떨어지게 된다.
뒤로 창업대출을 받아 법인으로 렌터카를 뽑는다. 그리고 렌터카들을 모두 대포차로 넘겨 버린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분양이 되지 않은 아파트를 시공사와 짜고 사내의 이름으로 분양 받은 뒤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는다. 역시 첫 수입은 대부분 시공사에게 돌아가지만, 그 뒤에 나는 사내와 전세계약을 맺고 경매가 넘어갈 때까지 그곳에 거주를 하다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담보물건. 창업대출. 렌터카회사. 아파트 담보 대출. 이 모든 것이 터지는데 4개월 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사내에게는 7천만 원이라는 돈이 쥐어진다. 운이 좋으면 민사로 떨어져 징역살이는 면하겠지만, 재수 없는 검사에게 걸리면 이 모든 것은 형사 건이 되어 징역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내는 7천만 원이라는 돈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 뒤에 사내는 무엇을 하고 살아갈까? 아마도 그는 그 돈을 아껴 두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은 제대로 무엇을 해보지도 못한 채 없어지게 된다.
난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서 딱 두 가지 경우만을 보아왔다.
돈을 미련하게 자신의 통장에 가지고 있다가 모두 차압을 당하는 사람. 그리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주식이나 놀음, 아니면 위험성이 많은 펀드에 투자를 해서 다시 빈 털털이가 되는 사람.
신용까지 팔아버리는 미련한 그들에게 쥐어진 돈이 기회로 바뀌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하지만 한사람의 희생으로 여러 기생충들이 먹고 살 수 있으니 그다지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난 사람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는 좋은 일을 하는 착한 마귀이다.
수많은 마귀들 중 오래 살아남는 방법은 돈이다.
이곳은……. 돈만이 존재하는 돈의 지옥이다.
(서연수)
“신음 소리에 기교가 있을 수 록 지갑의 두께는 두꺼워진다.”
우리와 같은 여성들이 장난스럽게 항상 내뱉는 말이다
모두가 집으로 향하는 시간. 우리는 출근준비를 하며 오늘도 욕망을 이기지 못한 사내들을 유혹하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난 악마의 욕망을 본다.
어쩔 수 없이 부끄러운 듯 찾아오는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더러운 욕망을 배설하고 음흉한 미소와 함께 뒤돌아선다.
그들은 이곳 밤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밤의 세상을 욕하는 이들이 오히려 우리를 소비하러 스스로 이곳을 찾는 것이다.
타락의 세계. 이곳에서 그들은 잠시 자신들의 이성을 술로 마비시킨다. 인간의 자제력을 잃어버려야지만 숨겨져 있는 더럽고 추악한 본능이 깨어나기에. 그 추악한 본능이야 말로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더러운 욕구를 최대치로 끌어 올려줄 수 있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최고의 쾌락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아가씨들의 몸을 탐닉 하며 밝은 사회에서는 금기된 모든 것들을 배설 시킨다.
욕설과 함께 유린 비슷한, 여성에게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섹스. 그것에 그들은 사회로부터 입은 분노를 터트린다. 아가씨가 고통스러워할수록 그들의 섹스는 더욱 강렬해지며, 사나운 괴성과 땀이 낮의 분노와 힘겨움을 잠시 잠재워 준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악마가 인간에게 선물해준 가장 유혹적인 선물인 성욕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악마의 본능이 있다. 모두가 똑같다. 결국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의 낮의 고통은 우리에게 큰 수익으로 다가온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쾌락을 선물한 나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안녕히 가세요. 오빠들. 다음에 또 와요. 그땐 서비스도 드릴게요. 내일 점심에 해장국이나 함께 먹어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모든 욕망을 해소한 그들은 다시 이성 속에서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힘겨운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늦은 새벽. 별들이 참 아름답다. 우리의 더러움을 위로하듯.
소재원 sojj12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