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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옥, “국민이 사법권의 주체가 되는 ‘대배심제’ 도입 필요”

  • 작성일 2017-06-02 22:55:38 | 수정일 2017-06-02 22:56:31
  • 사법개혁과 명량해전의 교훈

    임진왜란 당시의 해전은 원양에서가 아니라 육지의 해안 가까이서 벌어졌으므로 해안을 어느 쪽이 지배하느냐가 전투의 양상에 영향을 크게 미쳤던 것 같다. 초전에 4 차례나 출진하여 연전연승할 때까지는 경상도 해안에 대한 왜군의 정비와  통제가 아직 미흡한 상태였기에 조선수군은 퇴로차단의  염려 없이 진격해 들어가 적선을 찾아 쳐부수다가 지치면 포구에서 쉬거나 비바람을 피하거나 할 수 있었고 적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다. 조선수군을 제압하고 서해로 나가려 했던 왜군의 전략이 수군끼리의 조우를 성사시켜 주었으니 말 그대로 수군끼리의 싸움이었다.

    패전을 거듭하던 왜군은 조선 수군과의 전투를 포기하고 육지해안을 정비하여 조선인 부락을 소개하고 망루를 쌓고 병력을 배치하고 포대를 설치하였다. 그 때부터 충무공은 적의 수군을 상대한 것이라기보다 육군을 상대해야 하게 된 셈이었다. 우리 육군이 적을 내몰면 그 적을 바다에서 우리 수군이 깨부수기를 기대한 합동작전에 충무공이 (부득이) 참가하였으나, 육군의 성과가 미미한 터에 해전 아닌 싸움에서 육지를 향하여 수군(이 승전할 여지는 별반 없었던 것이다. 적들은 우리의 동태를 보아 여차하면 육군으로 공격하기도 하고 배로 공격하기도 해서 아군의 피해가 있었던 것인데, 이미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경상도 소굴에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우리 수군이 겪었을 고초가 느껴진다. 그러한 두 번의 사례(1593. 2월 5차 웅포, 1594년 9월 8차 장문포)를 패전으로, 나머지 6, 7차의 출진을 별무성과의 전투로  "조일전쟁"의 저자 백지원은 평가하고 있다. 충무공의 승전은 그 이길 만한 여건이 되었기에 얻어진 것일 뿐이고,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임을 알게 해 준다.

    대규모 출진이 위험하여 한산도를 굳게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함은 적어도 이 시점에서 분명해 졌던 것이다. 조정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정유재란 있기까지 2년 수개월 동안 충무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큰소리치던 원균이 통제사가 되고 보니 그 출진해서는 안 됨을 비로소 깨닫고서 머뭇거리는 것을 도원수 권율이 출진을 강요하여 칠천량의 비극이 있게 된 것이었다.

    명량 바로 코 앞인 해남 어란에 집결했던 압도적 숫자의 왜군이 병력 일부를 육지로 진격시켜 진도 벽파진과 해남 우수영을 공격하고 명량 양안을 접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더라면 13척의 판옥선은 오히려 포위되어 칠천량이 재현되었을  것이다. 저들이라고 그 생각을 못 했을까마는, 진도 해남의 곳곳마다에서 노적봉을 돌면서 강강수월래를 해 대는 저 수많은 사람들을 육지에서 상대함은 일을 그르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저들이 그걸 포기하였던 것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정유재란 때 육지에서 바다에서 충무공과 함께 싸운 고흥 보성 영암 일대의 의병들에 관하여 자료들이 검색된다. 육지에서의 의병전략은 육로를 통한 왜적의 접근을 막는 데 두어졌던 것이다. (네이버검색, 황병성, 정유재란기 이순신의 전략과 의병막하인물). 바다에서라 하여 달랐을 수 없으니, 의병들이 모아온 크고 작은 배들은 전투에도 참여하고 군세의 위장에도 쓰였을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충무공은 전라좌수사가 되기 전에 정읍현감을 거치셨고 전라우수영의 수군과 함께 그 동안 남해바다를 지켜오셨으니 살아 돌아온 그 양반과 함께인 한 모두가 죽을 힘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이 있나이다." 한 말은 그걸 의미한 것이었다. 그것이 명량해전이었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알고 늘 백성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백성들의 자발적 주도적 참여의 길을 열어주었기에 열두 척은 수백 척 수만 명 이상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 아래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설치라든지 경찰수사권의 독립이라든지 다들 그 요구되는 사항들임에 대하여 필자는 이의가 없다. 여기에서 나아가 보다 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검찰과 법원의 절차들에 국민의 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일이라고 나는 본다.

    수사와 기소절차에 대배심 제도를 도입하고 민형사 재판절차에서도 소배심 제도를 확대하여 국민의 마음과 상식이 검찰 사법 절차에서 사안을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할 때 우리는 그때의 그들처럼 함께 영광스러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책 미국연방대법원 판례시리즈 V에 실린 Hurtado (1884), Duncan (1968), Baldwin (1970), Calandra (1974) 등 일련의 판례에서 궁극적으로 배심제도는 적법절차의 필수적 요소로 확립되었다. 대배심 소배심을 아울러 국민의 자유와 정의의 수호에 있어서의 배심제도의 역할을 그것들은 잘 설명하고 있다. 배심제도의 도입과 확대는 재판과 수사절차에서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문제라든지 전관예우 등 우리의 사법절차에 잔존해 있는 악폐들의 제거에도 기여할 것이다.

    거듭, 그리고 언제나, 그때 저 명량대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민으로 하여금 주인공이 되게 하는 데 사법 검찰 개혁의 해법은 있다. 그것은 국민주권의  당연한 명령과 같다. 새 정부의 개혁의지가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형사사법에 미국식 ‘대배심’ 제도의 도입 절실
    우리나라 사법개혁 한축으로서의 ‘대배심제’

    대배심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 여부와 기소 대상을 결정하는데 1년 임기의 16~23명 정도가 선발되어 법원에 배속되어 활동하나 법원의 지휘는 받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을 수사해야 할지와 누구를 기소할지(기소에 필요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등을 대배심이 결정하는 것인데, 그 판단을 위한 광범위한 조사권한을 가집니다. 가령 4대강 사건을 수사할지 말지, 누구를 기소할지 말지를 조사를 거친 대배심이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연방헌법 수정 제5조처럼 일정기준의 범죄의 기소를 대배심에 의하여만 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공무원의 독직이 의심스러운 경우, 폭력범죄가 빈발하는 경우, 사립학교의 비리가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 등등에 관할 대배심이 독자적으로 조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니 검찰권의 행사가 국민의 의사에 의하는 범위가 확대됩니다. 조사에 필요한 영장을 법원에 요청하여 발부받습니다.

    대배심은 대립당사자 절차 아닌 일방절차이므로 자백증거 배제법칙,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대립당사자 절차에서의 피고인 내지 피의자의 권리는 인정되지 아니합니다. 진술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기부죄 금지특권은 적용되지만, 소추면제 내지 사용면제가 (법률에 의하여) 부여되면 대배심이 진술을 강제할 수 있는 등 대배심 권한의 행사가 넓게 보장됩니다. 그러므로 그 점에서 피의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한보다도 더 큰 권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법적용의 객체로서만 존재할 뿐 처분과 판단에서 주도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철저히 배제 소외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것을 끝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말합시다. 사법주권을 국민에게! 국민에게 사법주권을!

    400년 전에 열세 척으로도 나라를 구한 우리입니다. 사법주권이 국민의 손에 돌아가는 날 세계 일등의 나라는 우리입니다.

    소배심제도에 대한 에필로그
    - 정부의 압제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서의 배심제도, 통제되지 않는 권력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으로서의 배심제도 -

    미국 연방대법원의 화이트(White) 판사가 쓴 Duncan 판결 (391 U. S., 155-156 (1968))은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배심재판의 권리는 정부에 의한 압제를 방지하기 위하여 형사피고인들에게 부여된다. . . 적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제기된 근거 없는 형사고발들에 대처하여, 그리고 보다 높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목소리에 너무 쉽게 응하는 판사들에 대처하여, 보호를 제공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의 헌법들을 쓴 사람들은 역사로부터와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었다. 독립적인 사법부를 창설하기 위하여 헌법의 입안자들은 노력하였으나, 그러면서도 자의적 처분에 대처한 추가적인 보호를 그들은 역설하였다.

    “피고인 자신의 유무죄에 관하여 자신과의 동등 신분인 동료들로 구성된 배심의 판단을 받을 권리를 배심재판의 권리[는] . . .피고인에게 [제공한다.] 부패한, 지나치게 열심인 검찰에게 맞서서(against), 남에게 고분고분한, 편견을 가진, 또는 중심을 벗어난 판사에게 맞서서(against), 더 없이 귀중한 보장을 이 권리는 부여[한]다.

    “훈련은 더 많이 받았으나 [교]감은 덜한 판사 한 명의 판단을보다는, 배심의 상식에 기한 판단을 더 낫게 피고인이 여긴다면, 그것을 그는 가질 수 [있]다. . . 시민의 생명·자유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판사 한 명에게 또는 판사들 집단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배심재판[의 권리는] 나타낸다. . . .통제되지 않는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유무죄 판단에 있어서의 공동체의 참여(배심재판)에 대한 이 강조[는 표현한다.]

    “. .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깊은 의무는  연방헌법 . .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보호의 자격을 얻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국가]에 의하여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변호사 박승옥 법률사무소

    관리자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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