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기호학파의 학맥과 전북’ 학술대회



  • “어느 지역의 정신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동안 한 지역의 정신적 가치의 흐름이 맥(脈)을 이루고, 이것이 그 지역의 구심적 역할을 하게 될 때 지역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전북정신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학맥을 더듬어 보고, 그 정신을 찾는 작업은 절실한 작업이라 봅니다.”

    전라감영이 전주에 있던 시절, 전주는 현재의 전북과 전남, 제주도까지 관할하는 전라도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전라도 혹은 호남이라고 할 때, 이 말의 의미가 광주나 전남을 내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전주정신’ 혹은 ‘전북정신’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북역사문화학회와 전주문화원 공동주관으로 5일 오전 11시부터 전주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조선조 기호학파의 학맥과 전북’ 학술대회는 이 같은 움직임의 결과물이다.

    정신문화를 뿌리 내리고 꽃 피우게 하는 학문에는 면면히 이어진 스승과 제자의 학맥이 있기 마련이지만, 인의예지가 투철한 이 지역 선비들은 개인 영달보다는 학문에 매진하는 경향이 강해 이름을 세간에 알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또한 전란시 호남의병들은 사제간, 부자간 동반 순절한 예가 너무 많아 그 기록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 것도 허다하다. 그로인해 전북 정신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구조적인 한계가 많아 접근이 쉽지 않았다.

    이번 학술대회가 전주문화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현재 전주문화원에는 전라금석문연구회장인 김진돈씨가 사무국장으로 있고, 문화원 산하에는 전북서도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용엽 소장의 동국진체연구소와 전북문화재위원장인 이희권 소장의 전주문화연구소를 두고 있다. 또한 전북역사문화학회장인 원광대 나종우 교수가 부위원장으로 있고,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황안웅 교수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어 심층적인 연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학술대회에서도 나종우 교수가 기조발표를 하고 황안웅 교수, 이용엽 소장, 김진돈 사무국장이 차례로 주제발표를 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전북정신의 기저를 이루는 전북학맥을 더듬어보기 위해 조선 전기와 중기까지 전북유학의 맥을 집어나갔다. 그리고 조선조 학맥의 중심선에 있는 기호학파가 전북유학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전북의 유학과 선비정신’을 주제로 기조발제에 나선 나종우 교수는 전북정신을 지행합일의 의리정신, 외적에 대한 불굴의 저항 정신, 함께 살아가는 정신 등 세 가지로 분석했다. 또한 전북의 유학 계통을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이이-조광조-이항 등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다만, 이 학통관은 실제 학문의 전수관계나 학문의 업적만으로 설정되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리학이 지닌 도학의 측면인 ‘의리구현’을 기준으로 설정되고 인정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제발표에서 황안웅 교수는 정몽주에서 이황으로 이어지는 도통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전주사람인 유숭조를 조광조와 이이로 계통지어야 한다는 새로운 학설을 폈다.

    이용엽 동국진체연구소장은 ‘유극수 신도비’에 나타난 전북의 학맥을 발표했다. 조선초기 인물인 유극수의 신도비에는 증손인 유분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이 언급되고, 후손들의 사승관계가 기록돼 있다. 그동안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던 이 지역 실정을 감안할 때 이 비문은 전북의 학맥을 시대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은 전주근교에 있는 전주유씨들의 금석문과 편액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금석조사는 유습과 삼한국대부인, 유극수 신도비 등을 조사했고, 편액은 고산과 인후동의 시사재, 승유재, 용강서원 등에 있는 유명한 서예가들의 글씨로 접근했다.

    종합토론에는 유본기 용강서원 별임, 안진회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서홍식 전북역사문화학회 이사가 참여했다.

    서승 전주문화원장은 “전북정신을 찾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이번 학술대회는 조선 500년을 이어온 전북유학의 학맥을 찾는 작업”이라며 “문화의 바탕이 정신이라면 전북문화는 전북정신에서 찾아야 하고, 전북정신은 전북의 학맥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상기 s40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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