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제주올레길 이사장 인터뷰





  • 완주군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가 주관한 ‘길’ 세미나 지난 11일 오후 2시부터 완주군청 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주제는 ‘삼례에 삼남대로 박물관을 만들자’는 것. 조선시대 9대로 중, 제 6로인 통영대로와 제 7로인 삼남대로가 나뉘던 교통의 요지 삼례에 옛길 박물관을 만들어 길 문화를 선도하자는 취지다. 발제에는 신정일 우리땅 걷기 이사장, 서명숙 제주올레길 이사장, 안태현 영남대로 옛길박물관 학예연구사, 정휘 도시환경연구센터장이 참여했다. 이 중 서명숙 이사장은 현재의 걷기 열풍을 이끈 장본인이다. 올레에 집중하기 위해 여간해서는 육지로 나오지 않는다는 서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어린 시절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 제주. 대학 다니면서 서울로 왔고, 다시 돌아갈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길을 내기로 마음을 먹자 제주만큼 걷는 길을 내기에 좋은 곳이 없었기에 31년 만에 귀향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길은 제게 고향을 다시 보게끔 만든 소중한 존재입니다.”

     

    길은 언제나 있었고, 그 길은 걷기 위한 방편이었으니, 길에는 언제나 걷는 사람이 있기 마련. 그러니 지금의 걷기 열풍이 딱히 누군가에 의한 것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 사람을 언급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서명숙(52) 이사장일 것이다.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역임한 서 이사장은 23년간의 언론사 생활을 청산하고 도보여행자들의 로망이라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2006년 9월10일부터 10월15일까지 총 36일간, 800킬로미터를 걸었다. 애초에 걷기를 시작한 건 40대 중반이후 급격히 나빠진 건강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산티아고는 인생을 바꿔놓게 된다.

     

    걸으면서 자연이 주는 엄청난 위안과 평안, 행복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것. “몸은 힘들지만 오히려 치유되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제주올레를 만들 계획은 없었다. 당시에는 “나 혼자 그냥 걷고만 싶었지, 길을 내는 고생을 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한다.

     

    “걷는 게 너무 좋아서 5년마다 한 번씩 돈을 모아 산티아고에 다시 와야겠다고만 했지, 한국에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산티아고에서 우연히 만난 헤니라는 영국 여성이 ‘이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말해줬어요. 그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죠. 그때 처음 길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고,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현재 제주올레는 16개 코스, 270킬로미터에 달한다. 그 길을 올 한해만도 20만 명 가까운 올레꾼들이 다녀갔다. 2~3일이면 다 둘러본다고 여겨지던 제주섬을 올레꾼들은 일주일, 심지어는 보름 가까이 머물면서 제주의 속살 풍경과 진짜 인심과 토속음식을 즐긴다.

     

    행복한 건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올레코스에 위치한 마을 사람들도 행복하기는 마찬가지.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서 외지인은 거의 볼 수 없었던 지역에도 하루 수십 팀의 배낭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숙식을 이곳에서 해결하고, 길을 걸으며 감상했던 제주의 농축산물을 구입한다. 그만큼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만만치 않다.

     

    그 과정에서 고민이나 어려움도 많았다. “올레길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육지 사람들이 제주올레를 걷고 싶어 제주도에 와요. 그래서 올레 가는 길을 물어보면, 그때 제주 사람들 반응이 이랬어요. ‘여기도 올레다. 뭐 하러 거기까지 가서 걸으려고 하냐. 그냥 여기서부터 걸어라.’ 그렇게 핀잔주는 게 첫 번째 반응이었고요. 두 번째 반응은 ‘모른다’예요. 걷기 좋은 길은 호젓하고 외진 곳이 많다보니 제주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이 많죠. 근데 그때 사람들 반응은 그냥 모르는 게 아니라 ‘관심 없다’는 의미가 더 강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껴요. 특히 택시기사님들처럼 관광객에 민감한 분들은 이제 웬만한 올레길 코스정도는 다 알고 있어요.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죠.”

     

    제주올레를 개척하는 서 이사장의 원칙은 간단하다. ‘자연 그대로’ 길을 내는 것. 인공적인 것은 최소화한다. 길의 너비도 1미터를 넘지 않는다. 나무의 간격이 보통 1미터는 넘기 때문에 이 원칙만 지킨다면 자연을 훼손할 이유가 없다.

     

    삼남대로의 복원과 삼남대로 박물관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제가 한국을 수탈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게 신작로를 내는 거였어요. 그때부터 옛길은 훼손되고 잊혀 갔죠. 특히 수탈이 심했던 전라도 지역의 삼남대로는 더욱 그랬어요. 그 길을 다시 연결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삼남대로 박물관을 만들고 도보꾼들을 위해 주막 등의 시설을 갖춘다면 더 없이 좋겠죠. 그렇지만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해요. 이곳이 느린 삶의 혁명을 선언하는 거점지역이 됐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정말 길에 어울리는 박물관이 들어서길 바랍니다.”

    • 상기 s40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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