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의 하모니, 제3회 공재문화재

  • 이는 사람과 자연의 완벽한 하모니였다. 땅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는 빗방울 소리, 공연의 효과음처럼 가끔씩 존재감을 알리는 뇌성벽력 그리고 공연자와 관객의 절묘한 호흡, 이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였다. 인위적으로 연출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하모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오늘의 또 다른 주제였다.<본문 중에서>

    <공재 문화재가 열린 공재 고택>


    쾌청하지는 않았으나 유순하게 보이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 것처럼 잔뜩 찌푸려 있다. 행사가 열리고 있는 백포 공재 윤두서 고택에서는 50여명의 참석자들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ㄷ자형태의 공재 고택 안쪽 마루 아래는 조촐한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양쪽 마루에는 주민들과 외빈들이 서로 섞여 앉아 있다. 문이 열려있는 방에 앉아서 행사를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고택 마당에는 긴 조립형 텐트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안에 주민들이 앉거나 서 있었으며 고택 안마당을 벗어나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동네 골목길과 맞닿아 있는 담벼락 근처에는 이번 행사 기간 중 출품한 자화상들이, 일렬로 나란히 세워진 이젤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긴 텐트가 설치된 좌측 공간에는 음향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작은 텐트도 눈에 들어온다. 


    행사는 오후 2시에 시작되었다.  모든 행사의 통과의례 같은 다례제는 날씨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국 무용가 김영자씨의 헌무>

    다례제가 끝나고 김영자씨의 헌무 순서다. 순백색의 의상으로 차려입은 김씨가 춤사위를 시작한다. 한손에 작은 물동이 같은 옹기를 들고 그 속에서 꽃가루를 한 움큼 집어 하늘 향해 휙휙 뿌린다. 그리고는 제사상이 차려진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두 손은 허공을 가로저으며 먼저 살다간 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온몸으로 관객에게 전했다.


    김영자씨의 헌무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굵은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장대비가 악수같이 쏟아진다. 빗줄기가 음향기기를 덮고 있는 텐트 안으로도 들이친다. 고택 마당에 떨어진 비의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마당은 금세 연못이 되고 물이 흐르는 길로 변했다. 그런 중에도 행사는 계속되었지만 비를 피해 설자리가 여의치 않아 자화상 입상자들에 대한 시상식은 건너뛰었다.

    <사회자 박필수씨>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포만 하늘에는 다음 비를 뿌리려고 대기하고 있는 검은 비구름이 무리를 지어 머물러 있다.  그 와중에도 ‘내벗소리민족예술단’의 국악실내악, 판소리, 민요 공연은 계속되었다. 카랑카랑한 출연자의 노랫가락이 비에 젖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더니 곧 지축을 흔드는 천둥소리가 들린다. 초청하지 않은 이번 출연자는 번개와 천둥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번개가 잦아지고 천둥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더니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출연자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사라졌다. 음향시스템 전체의 전원이 나가버렸다. 음향 팀은 비상이다. 원인 파악을 위해 비가 오는 행사장을 이러 저리 뛰어 다닌다. 원인은 낙뢰로 인한 차단기 떨어짐. 음향 팀은 비상용 발전기 엔진을 가동해 음향시스템에 전원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이로서 비상 상황은 종료되고 스피커를 통해 출연자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공연과 함께 한 관객들>


    건물과 마당에 부딪쳐 요란을 비병을 지르는 빗방울, 머리털을 쭈뼛 서게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뇌성벽력도 행사의 열기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회자와 공연자의 모습은 굵은 빗줄기에 가려 옅은 커든 속에 든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만은 스피커를 통해서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출연자와 청중은 한마음이 되어 공연을 즐겼다. 마루에 걸터앉은 관객들은 공연자의 장단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몸은 좌우로 흔들며 흥겨워했다. 청중의 수는 적으나 어디서 이런 열정적인 관객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이는 사람과 자연의 완벽한 하모니였다. 땅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는 빗방울 소리, 공연의 효과음처럼 가끔씩 존재감을 알리는 뇌성벽력 그리고 공연자와 관객의 절묘한 호흡, 이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였다. 인위적으로 연출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하모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오늘의 또 다른 주제였다.


    오후 5시 경, 빗줄기는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뇌성벽력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러나 우산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공연은 이어졌고 출연자가 적은 탓인지 동일한 출연자가 반복해서 무대에 섰다. 그러던 중 절의 공양시간이 가까워졌다는 통보를 받고 미황사에서 온 참석자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들이 떠나자 관중석이 휑하니 빈 것 같다.

    <이병채 지부장과 박필수씨>


    6시 경, 간단하게 저녁을 마치고 이 행사를 주최한 민예총 해남지부장 이병채 선생과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지부장은 “공재 윤두서는 이 시대에 가장 저평가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 이유는 그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고 그 시대의 기득권층이 싫어할 수 있는 행위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즉 이전의 사군자나 사대부를 소재한 화풍에서 벗어나 평민이나 노비를 주인공으로 한 파격적인 화풍을 열었다. 또한 실생활에서는 하인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는 휴머니스트 적인 면 보여줬는데 이런 그의 행동이 기득권층에게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공재 관련 세미나에서 들은 얘기를 전했다.


    ‘민예총 해남지부’에서 ‘공재문화제’를 기획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공재 윤두서의 생가가 서울시나 다른 도시지역이었다면 벌써 공재 관련 축제가 생기고, 문화관이 들어섰을 것”이라며 “공재의 삶을 재조명해 그가 생전에 이룬 업적에 걸맞은 평가를 받게 하고 해남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기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7시 경,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멈추었다. 더 이상 비가 내릴 것 같지 않다. 행사 요원들은 질척질척한 마당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음식과 막걸리를 가져다 놓았다. 지금부터 지역주민을 위한 노래자랑 시간이다. 주최 측이 지역 주민을 배려해 이런 행사를 마련한 것 같다.


    참가자들은 노래방 기계의 반주에 맞춰 열심히 노래한다. 대부분 트롯이다. 이전 출연자들은 전부 국악을 했는데 이제 트롯의 장으로 바뀐 것 같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보물 동굴에 박힌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참 아름다운 밤이다.


    <글ㆍ 사진 : 윤승현>

    • 관리자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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