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 영랑 시인 ‘휘문고 명예졸업장’ 추서 추진

  • 1919년 기미독립운동 연루 옥고…졸업 기회 잃어



  • 강진군 ‘추서 건의’에 휘문의숙 측 ‘당연한 일’

     

    한국 현대시의 거성 영랑 김윤식 시인(1903~1950)이 모교인 학교법인 휘문의숙으로부터 90여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강진군(군수 강진원)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과정에서 휘문의숙 졸업 기회를 잃은 김영랑 시인에게 휘문고 측이 명예졸업장 추서를 적극 검토중이다고 13일 밝혔다.

     

    김영랑 시인에 대한 휘문의숙 명예졸업장 추서 추진은 지난 9일 박균조 부군수 일행이 휘문고를 방문,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추서의 당위성을 강조함으로써 학교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아울러 박 부군수 일행은 강진군과 휘문고 간 상호교류 방안의 일환으로 교직원 연수와 수학여행 및 문학답사, 영랑문학제 학생백일장 참가 등에 대해서도 피력, 상호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날 반의환 휘문고 교장은 “김영랑 시인이 우리나라 문학사에 끼친 영향을 감안한다면, 그 분에 대한 명예졸업장 추서는 당연한 일”이라면서 “이 같은 문제는 강진군이 직접 나서기 전에 모교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추진했어야 하는데, 워낙 훌륭한 분이라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반 교장은 “특히 영랑 시인은 월탄 선생․ 정지용 시인과 함께 휘문 문맥의 기초를 놓은 분”이라며 “동문회와 협의를 거쳐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명예졸업장 추서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영랑 시인은 190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1917년 휘문의숙에 진학했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김영랑은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강진 4․4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등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 관리자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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