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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최영진 강좌
  • 孔子(공자)의 行蹟(행젹) 2

  • 작성일 2016-05-15 07:42:12 | 수정일 2016-05-15 22:49:27
  • 공자님은 떠날 때가 된 것을 알고 제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오니, 노나라를 떠난 지 실로 8년 만이요, 공자 나이 43세요, 노나라 定公 원년 (BC 509)이다. 그때 계씨가 노나라 정권을 독단하고 있었는데, 그의 가신인 양호가 난을 일으켜 계씨를 가두고 정사를 독단하였다. 공자님은 벼슬을 구하지 않으시고 詩書(시서)와 禮樂(예악)을 닦으시니 제자가 더욱 많이 모여 들었다. 양호가 공자를 등용하여 정사를 함께 하려고 공자를 불렀으나 공자님은 그의 無道함을 고칠 수 없음을 알고 그에게 나아가지 않으신 것이다.

    定公 9년은 공자나이 51세라 公山不狃(공산불뉴)가 費邑(비읍)으로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님을 부르니, 공자님이 가려고 하셨으나 끝내 가시지 않으셨다. 그 때 자로가 공자님이 공산불뉴에게 가려고하자 “갈 곳이 없으면 그만이지 하필 공산씨에게 가려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자,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써 준 사람이 있다면 어찌 할 일이 없겠는가? 만약 나를 써 준 자가 있다면 나는 동쪽에 周나라를 만들 것이다.” 하셨다.   

    그 해에 定公이 불러 공자로 하여금 中都의 邑宰로 삼으니 1년 만에 사방에서 공자의 정사를 본받으려고 왔다. 마침내 司工(사공)이 되시고 마침내 大司寇(대사구)가 되어 그 다음 해인 정공 10년 정공을 도와 협곡에서 제나라와 회합하여 제나라가 침범한 땅을 돌려받았다. 정공 12년 子路로 하여금 계씨의 家臣을 삼고 세 도읍의 城을 허물게 하고 갑옷과 병장기를 겨두게 하였으나 맹씨의 집안에서 성을 허물지 않으므로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정공 14년은 공자나이 56세라 정승의 일을 대리하여 무도한 少正妙(소정묘)를 제거하고 국정을 운영하시니 3 개월 만에 크게 다스려졌다. 이에 이웃 나라인 齊나라가 공자를 두려워하여 공자를 내쫓고자 계환자에게 美女와 樂工을 보내어 노나라를 어지럽게 하고자 하니, 공자님은 이를 저지하였으나 계환자가 받아 들리고 음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으므로 뵙기를 청했으나, 만나주지 않자 노나라에 도가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노나라를 떠날 것을 결심하고 제자들을 데리고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가서 자로의 처형인 안탁추가에 주인을 정하고 머무시다가 진나라로 가시는 도중 광땅에 이르게 되었는데 광땅 사람들이 무도한 양호로 오인하고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오해가 풀려 다시 위나라로 돌아와 거백옥가에 주인을 정하시고 靈公(영공)의 夫人인 남자가 만나기를 요청하자 남자를 만나고 다시 위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가셨는데 宋나라 대부 사마환퇴가 죽이려 하므로, 송나라를 떠나 진나라에 가시어 사마성정자의 집에 주인을 정하시고 삼년간을 머무시다가 다시 위나라로 돌라 오셨는데 영공은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다.

    다시 송나라로 가서 진나라로 가는 도중에 식량이 떨어져 제자들이 굶고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자 子路가 성난 얼굴로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君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진실로 궁한 것이니, 소인이 궁하면 도적이 된다고 하시었다. 이때가 공자 나이 63세였는데 진나라 조간자의 가신 필힐이 中牟(중모) 땅을 배반하고 공자를 부르니 공자께서 가시려 했으나 또 결행하지 못하셨다. 자로가 말하기를 “옛날에 내가 선생님께 들으니, 말씀하시기를 몸소 그 몸에 착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자에게는 군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필힐이 중모 땅을 배반하여 선생님을 부르신데 가려고 하신 까닭이 어째서 입니까?”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단단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갈아도 옅어지지 않으니 희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내가 어찌 뒤웅박 같아서 한곳에 매달려 먹기를 구하겠는가?” 하고 말씀하시고 서쪽으로 가서 조간자를 만나려 하였으나 황하에 이르려 다시 돌아와 거백옥의 집에 주인을 정하시었다, 영공이 불려 등용하고자 하여 공자님께 진법을 묻자, 공자님은 “내가 제사 지내는 일에는 익숙하나 군대를 부리는 일은 모르신다.” 고하시고 위나라를 떠나 다시 진나라로 가셨다.   

    魯나라 季桓子(계환자)가 죽으며 그의 아들 康子(강자)에게 유언하기를 반드시 공자를 불려 등용하라고 하며, 노나라를 안정시키라고 하여 공자를 부르려 하니 그의 신하들이 저지하므로 등용치 못하고 공자의 제자 冉求(염구)를 등용하였다. 그때 당시 공자님은 葉(섭)땅에 머무르고 계셨다. 섭공이 정사를 물으니, “近子說(근자열) 遠者來(원자래)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면 먼 데 사람이 온다.” 하시니, 또 말하기를 나의 무리 중에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집에 들어온 남의 양을 돌려주지 않자 그 아들이 증인이 되어 그의 아버지를 관에 고발 하였다 하니,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무리는 그와는 다르다. 아비는 아들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비를 숨겨 준다. 정직은 그 가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공자 년 65세에 초나라 召王(소왕)이 서사의 땅을 주어 공자를 대부로 봉하고 정사를 함께 하려 하셨으나 令尹子序(영윤자서)가 극구 반대하므로 실행치 못하였다.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시니 靈公(영공)은 이미 죽고, 그의 손자 輒(첩)이 위나라 군주가 되어 공자에게 政事를 맡기려 하였다. 자로가 말하기를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사를 함께 펴려고 하시니, 선생님은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하고 묻자,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名分을 바로 세우겠다.” 말씀하시니, 자로가 말하기를 “어떻게 名分을 바로 세우려 하십니까?”하고 또 물으니,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그 말이 순하지 못하고 그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形政(형정)이 바르지 못하고 形政이 바르지 못하면 백성이 手足을 둘 때가 없다.” 하시며 “군자가 명분을 얻으면 반드시 말할 수 있고 반드시 행할 수 있는 것이니, 군자는 그 말에 대하여 구차함이 없을 뿐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당시 공자의 제자 염유가 季康子(계강자)의 장수가 되어 제나라와 싸워 공을 세웠는데 季康子(계강자)가 심부름 하는 사자를 보내어 공자를 부르므로, 子路로 하여금 위나라에 남아 정사를 돌보게 하시고 노나라에 돌아오시니, 애공 11년 공자나이 68세가 되었다. 실로 노나라를 떠난 지 햇수로 13년이 되었다.

    계강자가 불러 정사를 물으니, 정치란 바르지 않는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니, “그대가 바름으로 정사를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못한 짓을 하겠습니까?” 하고 대답하니, 또 묻기를 도둑을 걱정하시자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탐욕을 부리지 않는 다면 비록 상을 준다 해도 백성들은 도둑질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셨다. 그러나 계강자는 공자를 등용하지 못했고 공자님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으셨다.

    69세에 아들 孔鯉(공리)와 顔淵(안연)이 죽자 공자님은 안연의 棺(관)을 붙들고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 하시며 삼일을 통곡하시고 삼일을 굶으시고 그를 애도하셨다.

    다음편에 계속됨니다.

    청송 haenam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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