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최영진 강좌
  • 儒家의 道論(유가의 도론)

  • 작성일 2015-01-06 11:19:07 | 수정일 2015-01-06 22:31:01
  •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

    도야자 불가수유리야 가리 비도야 시고로 군자는 계신호기

    所不睹하고 恐懼乎其所不聞이라 故로 莫見乎隱하고 莫顯乎微

    소불도하고 공구호기소불문이라 고로 막현호은허고 막현호미

    故로君子 愼其獨也니라.

    고로군자 신기독야니라.  

    해석. 道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삼가며 그 듣지 않은 것에 대하여 두려워 한 것이다. 숨겨진 것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으니 때문에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  

    한자풀이. 須모름지기수, 잠깐수 臾잠깐유 離떠날이 戒삼가할계 경계할계 愼삼가할신 睹볼도 恐두려워할공 懼두려워할구 聞들을문 隱숨을은, 은밀할은 莫아니할 막 見나타낼 현 微적을 미, 은밀할 미 顯드러낼 현 獨홀로 독

     

    해설. 道는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는 것은 道가 아니라 했다. 人間의 性은 인간이 지녀온 自然이요, 거기에 따르는 그대로가 道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道는 인간이 걷는 길이요, 그것은 인간의 자연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 인간된 자연을 떠나지 않는 한 인간이 있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는 道가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道가 자기에게서 잠깐이라도 떠나지 않는 경지야말로 자신의 고귀한 삶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것이다. 거기에 이르려면 자기 본연의 性에 대한 원숙한 체험으로 끊임없이 정성스럽게 되고자 하는 정신생활이 필요하다. 때문에 君子는 보이지 않는 것을 삼가고 듣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이란 남의 耳目(이목)이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깊은 마음속의 세계며 道와 非道가 가름되는 곳이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않는 나 혼자만이 있을 때 더욱 삼가고 두려워한다. 숨어서 남모르게 혼자 하는 일이어서 無妨(무방) 할 것도 같으나 비록 그런 때라도 道가 나로부터 遊離(유리)된다면 그것은 이미 道일 수가 없는 것이요, 더구나 나 자신이 하는 일인 만큼 나에게 있어서 그 보다 더 明白한 일은 없을 것이니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書經(서경) 대우모편에 [人心은 위태하고 道心은 微奧(미오)하나니 정밀이하고 한결같이 해서야 眞實로 그 中을 잡으리라]하였다.

    人心은 인간의 欲情的(욕정적)인 면을 말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서 인간의 동물적인 屬性(속성)인 것이다. 道心은 곧 이성적인 면을 가르치고 그것은 인간의 본연의 性에 바탕하고 있다. 인간은 그 자질의 차이에 구애 없이 人心과 道心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깊은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면서 人心은 언제나 道心에 대하여 은미하고 깊어서 뚜렷이 드러나기 어렵다. 그런데 인간이 道와 遊離(유리)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은 人心과 道心중 어느 쪽이 어느 쪽을 지배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道心이 人心을 다스려야만 진정한 人間의 道가 행해진다. 때문에 君子는 항상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에 대하여 삼가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정밀이 하고 한결같이 하고서야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 했다“ 이것은 자기 내부의 道心과 人心을 뚜렷이 구분하여 오로지 道心에만 성실히 함으로써 사물에 가장 합당한 대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自己省察(자기성찰)의 修養을 진지하고 성실히 함으로써 道心이 확고한 자기 주체로 되고 人心이 다스려질 때에 비로써 自己完成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으로써 자기를 守護(수호)하고 高揚(고양)시켜가려는 것이요, 스스로의 삶을 유감없이 살자고 하는 인간의 욕구일 것이다.

    숨겨져 있는 것은 언젠가 드러나지 않음이 없을 것이고 미세한 것이 언젠가는 드러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군자는 남이 알지 못하는 나 혼자만이 아는 곳 깊은 마음속의 생각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다.

    大學에서 [誠意(성의)를 無自欺(무자기)라 했다] 곧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일이라 했다. 이 자기는 본래 善한 자기이다. 그러한대 사실 모든 사회악의 근본 원인은 이 자기를 속이는 데서 비롯되며, 그 자기를 아주 망각해버린다면 인간은 그야말로 道具를 사용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유가의 중심과제를 자기 확립에 두어졌고 그 확립에 길이 뜻을 세우고 정성을 다하여 人間의 道를 행하는데 두었던 것이다.

    군자가 愼獨(신독) 곧 홀로 있을 때 삼가 한다는 것은 곧 誠意(성의)의 일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더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해서이며 곧 자기의 本性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군자가 홀로 있을 때 삼가는 것은, 人慾(인욕)을 억제하고 邪惡(사악)을 제거하는 한편 善으로써 자기 내부를 충실케 하기 위해서다.

    愼獨(신독)은 그것이 誠意이면서 한편으로는 敬을 의미한다.

    칸트는 인간과 구별된 나와 타인의 人格에 대한 恭敬의 중요함을 강조했고, 조선조 선조 때의 大儒 李退溪는 생활을 主宰(주재)하는 것이 무엇인가의 질문에, 持敬(지경) 또는 居敬(거경)으로 대답했다. 효종 때의 김집은 愼獨(신독)을 그의 제호로 까지 했다. 易坤(역곤) 괘문 전언에 [敬으로 內心을 바로 잡고 義로써 外行을 바르게 한다]고 했으며 공자님은 [인간의 생은 直이다. 邪曲(사곡)되게 산다는 것은 요행을 면하는 것일 따름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 성리학자 청송  최영진 -

    청송 haenam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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