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45)

  • 작성일 2009-08-19 15:03:22 | 수정일 2009-08-28 07:14:33
  • 애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나의 무표정한 얼굴엔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속은 더욱 타들어 갔다. 온몸이 떨려오는 당혹함. 그리고 심장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분노, 하지만 누나는 그런 날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세인이 어디 간 거냐고!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누나와 세인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가냐고!”

    처음이었다. 누나에게 소리를 내지른 것은. 그런데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해보라는 듯’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은 수년을 봐온 누나가 아니었다. 내게 유일한 가족, 부모의 기억이 없는 나에게 ‘엄마가 있었다면 바로 누나와 같은 사랑을 주었겠구나.’ 라고 느끼게 만들었던 사람.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에게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낯설게 느껴지는 누나의 모습에 강한 둔기로 뒤통수를 뚜들겨 맞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못해 누나가 입을 열었다.

    “세인이, 마이킹이 너무 쌓여서 다른 곳으로 떠났어. 가게 자금사정이 어려워서 마이킹 많은 아가씨들 다른 곳으로 보내고 있는데 세인이도 포함된 거야.”

    정말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서연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눈을 감고 듣거나 전화기를 통해 들었다면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할 정도로 차가운 음성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아니,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누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생겨났다.

    나는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을 삭이며 겨우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누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세인이 마이킹은 내가 해주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해결 해 줄 수 있는 문제이자 누나가 해 줄 수 있는 문제잖아. 그건 핑계거리가 될 수 없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있는 사실대로 말해달란 말이야!”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한번 질러버릇 하니, 쉽게 언성이 높아졌다. ‘차분하게 이야기 해야지.’ 라고 다짐 했던 가슴은 어느새 또 폭발해버렸다. 참을성 이란 단어는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였다.

    “세인이가 네게 말하지 말라고 했어. 자기도 더 이상 분당에 있기 싫다고 했어. 반복되는 생활도 지겹다고 했고.”

    싸늘한 어투와 이해 할 수 없는 말이 다시 전해졌다.

    “젠장.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세인이와 내가 그 정도 사이 밖에 안됐고 누나와 세인이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사이었어? 지금 뭐가 어찌 된 거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쳐 돌아가는 거냐고!”

    겨우겨우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말을 하는 도중 앞에 놓인 음료수를 집어던졌다. 아슬아슬하게 누나를 피해 벽에 부딪힌 음료수가 터져 나왔다. 내용물은 보기 좋게 누나의 머리와 얼굴에 뿌려졌다. 난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날뛰며 손에 잡히는 것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분노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풍지박살 나고서야 거친 숨이 차올랐다.

    “다했니?”

    누나는 내 행동이 멈춰서야 티슈로 얼굴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난 그런 누나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고통도, 짜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생명이 없는 인형을 들어 올린 것 같았다.

    “말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어서말해!”

    멱살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누나의 몸도 힘없이 흔들렸다. 드디어 감정이 폭발했는지 내 귀에 곧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미친년이 지 동생이 빠순희 만나는데 그걸 가만히 놔둬! 어떤 또라이가 그걸 보고만 있냐고!”

    나도 모르게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누나는 날 세차게 밀어내며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시작했다.

    “세인이 내가 3년을 넘게 데리고 있었어! 그년 2차 나가는 거, 호빠가서 선수랑 나뒹구는 거 다 보고 지낸 사이야! 그년이 사귀었던 남자들이며, 그년이 잠자리에서 어떤 체위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남자들 요리하는지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나라고! 그런데 어떤 정신병자 같은 년이 지 동생 그런 개 걸레 만나는데 보고만 있냐고!”

    누나가 눈물을 쏟아냈다.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눈물이었다. 보육원에서 그렇게 지독한 일을 겪으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

    마지막 말은 힘이 빠졌는지 쉰 소리가 전해졌다.

    “왜! 도대체 왜! 난 정상인처럼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내 동생 아끼는 것이 잘못된 거야? 내 동생 내가 보호하겠다는 것이 그렇게 네게 욕먹을 짓이야? 도대체 왜! 내가 이런 더러운 꼴로 지금 네 앞에 있어야 하는 건데? 내가! 내가! 왜! 이렇게 비참한 몰골로 네 앞에서 이렇게 울고 있어야 하는 건데!”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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