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36)

  • 작성일 2009-08-05 19:27:19 | 수정일 2009-08-28 07: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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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잘 모르겠어. 이런 감정이 잊힌 거라 하는 건가? 그냥, 아무렇지 않긴 한데 말이야, 답답하네. 어떤 비밀이 있는지 답답해 미치겠네. 휴~ 오늘 빡세게 운동이나 좀 해볼까? 몸을 혹사시키면 이런 잡생각도 줄어들겠지?”

    천이 다시 헬스장 안으로 들어간다. 아영은 최면에 빠진 사람처럼 그를 멍하니 바라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잊혀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때 일을 두 번 다시 꺼내지 않는 날이 빨리 왔으면 정말 좋겠다. 네가 그 때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너무 힘들고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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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깁니다.”

    창석이 다시 찜질방을 찾았다. 장 사장은 주위를 한참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했다.

    “여기 뭐가 있나?”

    창석이 장 사장에게 설명을 하려는데, 한 사내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예전에 창석과 화장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내였다.

    “아이고!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또 무슨 볼일이 남으셨습니까?”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사내에게 창석 역시 반가운 모습으로 그를 맞았다.

    “네. 아직 볼 일이 좀 남았네요. 우리 화장실 좀 갈까요?”

    “헤헤. 그러시죠.”

    창석과 사내가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게 어떤 상황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장 사장이 ‘옳거니!’ 하고 두 손뼉을 마주 쳤다.

    화장실 안에 들어선 사내가 다른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창석에게 농담을 던졌다.

    “헤헤. 원래 냄새나는 뒷간이 애기하기는 딱 좋지요. 집중도 잘되고요. 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어린 시절에도 항상 애용하던 장소잖아요. 짤짤이 할 때. 하하. 그나저나 이번에는 무슨 일이신지......”

    이번에도 돈 냄새가 나는 일이라는 것을 직감한 사내가 궁금증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장 사장은 두 사람이 자신을 배제 한 채 이야기를 하자 헛기침을 해 보였다. 그제야 두 사람은 장 사장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 일단 인사부터 하시죠. 이 분은 저와 함께 일하시는 사장님이십니다. 사장님 이쪽은, 아! 저기 성함이"

    “그냥 하 씨라고 부르쇼.”

    “아! 예. 이쪽은 이번 사업관련 정보를 주신 분이십니다.”

    사내가 먼저 통성명에 대한 인사를 했다. 뻣뻣한 자세로 장 사장이 인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요?”

    달콤한 사탕이 어떤 맛인지 궁금해 하는 어린아이처럼 하 씨가 급하게 물었다.

    “하하. 급하시기는, 하 씨, 이번에 30명 정도 사람들 좀 모아줄 수 있나요?”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왜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하 씨가 알아봐준 사채업자들에게 저희가 드리는 카드를 깡해서 현찰로 받아오시면 됩니다.”

    “카드요?”

    하 씨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장 사장이 창석을 살짝 밀어내며 끼어들었다.

    “아! 사실 우린 3금융 대출업자 들이요. 우리 회사 광고도 나오는데.”

    “대출 회사? 어떤 대출회사요?”

    의심을 쉽게 풀지 않는 하 씨에게 장 사장이 지갑을 열었다. 상호가 다른 수많은 명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 한 장의 명함을 꺼냈다. 순금으로 만든 고급 명함이었다. 명함에는 광고에 자주 나오는 대출회사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하 씨가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젠 장 사장의 현란한 언변이 빛을 보일 차례였다.

    “경기가 어렵다보니 우리가 회수 하지 못한 대출금액이 상당수 되오. 회수하지 못한 금액들 대신 고객명의 카드를 대신 담보 잡았는데 현금화를 좀 시키려 하는 것이오. 물론 고객들 동의도 모두 받았소. 하지만 깡이라는 것이 법적인 문제가 걸리지 않소이까.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여기까지 출장 오게 된 것이오. 우리가 직접 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좀 입을 거 같아서 그러오. 일은 간단하오. 그냥 우리가 주는 카드를 가지고 한도대로 깡만 쳐서 오면 되는 것이니.”

    낮고도 점잖은 음성. 평소 장 사장의 장난기 어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행동과 말투는 절제되어 있었다. 손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었고, 말투는 딱딱하며 다른 사람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어투였다. 사뭇 진지한 그의 모습에 창석마저 낯선 느낌을 받고 있었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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