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30)

  • 작성일 2009-07-28 12:54:13 | 수정일 2009-08-09 18:16:51
  • “지금 정선 카지노 쪽으로 일 나갔습니다!”

    그제야 몽둥이는 범휘의 손에서 해방되었다.

    공포에 질린 몇몇 녀석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때리다 지친 범휘의 입은 마른침을 뱉어냈다. 기절한 녀석의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고, 구멍이 뚫린 곳에서는 어김없이 진한 색 붉은 액체가 흘러 나왔다.

    “여기 봉고차 세대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선 카지노 쪽에 가서 녀석들 쓸어버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내들은 각자 타고 온 차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기회는 재빠른 사내들의 몫이었다. 남은 사내들은 범휘를 보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남아있는 사내들에게 범휘가 소리쳤다.

    “이 새끼들 정리하고 두 놈은 나 따라와.”

    쉽게 범휘를 따라 나서려는 사내가 없었다. 하지만 행동이 느린 두 사내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중심으로 양 갈래로 나눠진 복도식 원룸이었다. 그는 계단에 근접한 원룸 현관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핸드폰하고 잡다한 것들 다 찾아 불태워 버려.”

    “예, 형님.”

    두 사내의 행동은 아주 빨랐다. 사내들이 이리저리 서랍을 뒤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범휘는 2층으로 올라가 다른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뭐야. 이 새끼들 장난 아닌데?”

    범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에는 운동기구들이 즐비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원룸 다섯 개 정도를 터서 만들어 놓은 헬스장이었다. 한번에 20명 정도가 운동을 해도 될 만한 공간이었다.

    “휴~ 이 새끼들 꾸준히 경계하고 있었군. 독한새끼들.”

    잠시 그들의 철저한 준비성과 노력에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도 모르게 살이 떨려왔다. 낡은 의자를 발견한 그가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오 사장님. 정리 모두 했습니다. 정선 쪽에 일 나가 있는 잔당들만 처리하면 됩니다.”

    “그래. 수고했네. 생각 보다 일찍 정리 했구먼. 이제 슬슬 돈 좀 벌어 봐야지? 우리 박 실장만 믿고 말이야. 하하!”

    “예. 형님께 아가씨들 하루라도 빨리 올려 달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하시게.”

    범휘가 끓어진 휴대전화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천천히 눌러본다. 번호가 다 눌러지자 하나의 이름이 뜬다. ‘서연수’ 그녀의 이름이다. 하지만 끝내 통화 버튼은 누르지 못한다.

    ‘답답하다. 그녀와 너무 멀리 있는 거 같아 조금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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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미안. 좀 늦었지?”

    룸 대기실.

    연수를 중심으로 빙 둘러 앉은 아가씨들이 한창 미팅 중이었다. 아영은 조용히 중국에서 넘어온 아가씨들과 함께 자신이 기존에 데리고 있는 아가씨들 곁으로가 자리를 잡았다.

    “뭐야? 아가씨들 츄라이 보느라 늦은 거야?”

    “아니. 일단 미팅해. 끝나고 애기하자.”

    주위의 다른 실장들과 아가씨들의 눈치가 보인 아영이 재빨리 수첩을 꺼내들었다. 연수가 다시 미팅을 이어갔다. 아영과 다른 실장들은 미팅내용을 수첩에 열심히 적어나갔다.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 실장들 예약손님 많아 보이니까 실장들 미팅은 내일하자.”

    미팅이 끝나자마자 저마다 화장을 하거나 잡담을 하기 바쁘다. 카드를 치려 자연스럽게 조그마한 원을 그리며 앉는 모습도 보였다. 그 가운데 중국 아가씨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리와.”

    아영이 중국 아가씨들에게 손짓했다.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그녀를 따라 나섰다. 연수도 함께 뒤를 쫒았다. 아영은 음악소리가 나지 않는 빈 룸을 찾아 들어갔다.

    “여기에 좀 있어. 삼촌!”

    아가씨들을 앉혀놓고 카운터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음료수랑 라면 좀 끓여다줘. 언니, 우린 옆방에서 애기 좀 하자.”

    아영이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연수의 팔을 낚아채 옆 룸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저 애들은 뭐야? 일을 해본 거 같지도 않고, 한국 애들도 아닌 거 같은데?”

    들어서자마자 연수의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내 새끼들 아니야.”

    “그럼? 누구 새끼야? 다른 실장 오는 거야? 그럼 언니한테 미리 애기했어야지. 가게 대마한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이렇게 아가씨들 데려오는 경우가 어디 있어?”

    아영이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연수가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았다.

    “무슨 말 못할 일이니? 누구야? 별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심각해?”

    연수는 별일도 아닌 일로 아영을 너무 몰아 붙였다는 생각에 조용히 말했다. 아영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테이블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천이 새끼들이야.”

    아영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두 손을 매만졌다. 하지만 들려오는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천이 새끼? 그런데 왜 네가 데리고 와?”

    “중국에서 금방 넘어왔어. 동대문 들렸다 바로 가게로 오는 길이야. 천이 정선 넘어갈 동안 내가 3일정도 봐주기로 했어.”

    “정선? 정선은 왜?”

    “룸 보도 다 정리하고 넘어가겠데. 닷찌하러.”

    “닷찌? 돈 좀 되는 일 물었네.”

    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연수가 테이블에 세팅되어있는 음료수를 하나 집어 들었다. 갈증이 많이 났는지 단숨에 캔을 비워냈다.

    “휴~ 천이가 직접 넘어가는 거야?”

    3년 만에 처음으로 천이 소식을 물어 보았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서로에 대해서 묻거나 만나지 않았다. 심지어 가끔 아가씨가 모자라 천이 아가씨들을 부를 때에도 아영을 통해서 부르곤 하였다. 하지만 항상 다른 보도보다 천이의 보도를 불러주곤 했다. 연수의 태연함이 유지되자 아영이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고 좀 전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결심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니, 범휘가 벌써 가있어. 천이는 이곳에서 안마보도만 돌린데. 그런데 실장이 없어서 조금 곤욕스러운가봐.”

    넌지시 실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 내친김에 연수에게 실장으로 가보라는 제안까지 할 생각이었다. 연수와 아영의 보이지 않는 감정은 이미 곯을 대로 곯아있었다. 언제나 친 자매처럼 지내왔지만, 그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깊은 항상 골이 존재했다. 아영과 연수가 밥을 먹을 때 세인의 이름이 오르는 순간 서로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이곳을 떠나야 된다는 것을. 이제 더 이상 아픔을 감출 수 없을 만큼 그녀들은 지쳐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쉽게 떠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영이 굳은 결심에 말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찰나, 연수가 말했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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