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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의 대한민국.(28)

  • 작성일 2009-07-24 11:48:14 | 수정일 2014-12-24 21: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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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갈 괜찮은 사람이 있긴 한데.”

    멍하니 운전만 하던 천이 번개같이 아영에게 바라보았다

    “누구?”

    “아니다. 괜한 말 꺼낼 뻔 했어.”

    번뜩이던 그의 눈빛에 아영이 찬물을 끼얹는다. 그녀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데 그래? 아영이 네가 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콜이다. 대체 누구야?”

    답답함의 갈증을 참지 못한 천의 입이 바짝 말랐다. 하지만 아영은 계속 머뭇거리며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야. 그냥 헛소리 한 거야.”

    “참. 뭐야? 누군데 그렇게 계속 뜸을 들여? 뜸 오래 들이면 된 밥된다. 빨리 애기해봐.”

    닦달은 계속되었다. 천의 시선은 도로와 그녀를 바쁘게 오고갔다. 이젠 거의 징징거리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마지못한 아영이 천을 바라보지 못하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순간 그의 굳은 표정을 보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연수 언니. 내가 말하려는 사람, 연수언니였어. 중국어도 좀 되고.”

    아영의 말에 차안은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비는 점점 굵어졌다. 아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이퍼가 아영의 심장과 비슷한 속도를 내었다.

    신호가 없는 전용도로를 빠져나와 첫 번째 신호등에 차가 멈췄다. 천은 아무 말도 없다. 두 번 채 신호등에서 다시 정차했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켜냈다. 세 번째 신호등에 차가 멈춰 섰을 때, 그가 창문을 조금 열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오래 됐다. 정말 오래됐어. 연수누나 이름을 들어본지도.”

    천이의 음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아영의 심장은 그제야 정상적인 박동을 되찾았다. 그리고 긴장감 속에 창밖을 응시하던 피로한 눈을 오랜 시간 감아본다.

    ‘그래. 그렇게 평생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평생을 연수 언니만 원망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네 원망이 깊어질수록 나 연수 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진다. 차라리 너와 나 사이에서 언니가 정선으로 떠나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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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 다 됐어?”

    “예. 형님.”

    범휘가 주차장을 다시 찾았을 땐, 이미 사내들이 식사를 마치고 대기 하고 있었다. 그가 나오자 식후에 언제나 빨아대는 담배를 급하게 바닥에 버렸다.

    “휴~ 그래. 아우들, 아무리 공권력이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칼은 쓰지 마. 연장은 모두 강목이나 방망이, 쇠파이프로 해. 출발하자.”

    범휘가 나지막하게 말하고 차에 올랐다. 사내들은 일제히 타고 왔던 차량에 다시 몸을 맡겼다. 주 실장에게 건네받은 지도가 운전석에 앉은 사내에게 전해지자 곧바로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도 근처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길을 빠져나와, 왔던 길을 5분 쯤 되돌아갔다. 그러자 다시 산길로 빠지는 비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약도 상에는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300미터 앞에 보이는 건물이 그들의 본거지였다. 건물의 그림자가 보이자 범휘가 말했다.

    “여기서 멈춰.”

    범휘의 말에 일제히 차들이 멈춰 섰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사내들도 함께 내렸다. 이제야 긴장이 좀 되는지 표정들이 밝지 않다.

    “연장들 챙겨.”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빨리 자신들의 몸을 보호해줄 둔탁한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행동은 아주 빨랐다. 순식간에 무장을 한 사내들이 범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동안 운동하느라 많이 힘들었지? 모두들 수고 했어.”

    범휘는 앞에 서있는 몇몇의 어깨를 다독이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다쳐도 병원에 갈 수 없다. 그러니 몸 안 다치게 조심들하고 다쳐도 심하게는 다치지 마라. 우리 아우들 몸이 형한테는 재산이니까.”

    “예! 형님”

    친형이 동생에게 말하는 듯하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사내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피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 방법만 큼은 천이보다 범휘가 한 발 앞서 있었다.

    “그래. 서두르자.”

    범휘는 다시 사내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사내들은 일제히 그림자만 보이는 오피스텔 건물로 뛰기 시작했다. 사내들이 어느새 근처까지 다다랐다.

    한참 뒤쳐진 범휘가 사내들에게 소리쳤다.

    “차들부터 부숴!”

    명령어를 입력하면 즉각 반응하는 기계들과 같이 일사천리로 사내들이 움직였다. 주차되어있던 세 대의 승합차는 순식간에 고철로 변해 버렸다.

    둔탁한 소리에 건물 안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창문을 열었다. 안에 있던 사내들은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안으로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안에서 속옷만 걸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왔다. 온 몸을 휘감은 문신들 보다 사내들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 보였다. 안에서 내려온 이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아마 일부는 저녁시간 아가씨들을 데리고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넓은 공터와 같은 주차장에서 사내들이 서로 뒤엉켰다. 그들에게 대화는 중요치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방에서 일제히 주먹다짐이 일어났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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