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25)

  • 작성일 2009-07-24 11:46:14 | 수정일 2009-08-09 18: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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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이런 곳에 얼마나 있어야 된다는 거야? 그 새끼들은 이런 곳에서 잘도 버텼구먼.’

    범휘를 따라온 사내들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곧 마찰이 있을 상대 조직에 대한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뒤따라오는 봉고차에서는 시골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소리가 빵빵 울려 퍼졌다.

    20분 쯤 더 내달린 차들은 천이와 오 사장이 만났던 가든이 있는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잠깐 멈춰.”

    가든이 보이자 범휘는 창문을 내려 뒤따라오던 봉고차를 향해 소리쳤다.

    “음악 줄여!”

    범휘의 말에 봉고차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 졌다. 다시 차가 움직일 땐 엔진소리만이 조용하게 들려왔다.

    범휘가 오 사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를 받는 대신 오 사장이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왔다. 직감적으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범휘가 먼저 인사를 했다.

    “오 사장님? 반갑습니다. 박범휘라고 합니다.”

    오 사장이 인사를 받음과 동시에 봉고차에 타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내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싼 사내들을 보며 흡족해 했다.

    “이야! 사내들 뽀다구들이 좋구먼. 일단 들어가지. 같이 온 사람들은 따로 식사를 마련했으니 박 실장은 같이 들어가자고.”

    “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범휘가 오 사장을 따라 들어가자 뒷짐을 지고 서있던 사내들의 자세가 풀어졌다.

    음식이 마련된 장소는 얼마 전 그들과 천이 애기를 나두던 방이었다. 주 실장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간단한 목인사와 함께 어색한 분위기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자! 일단 뭐라도 좀 들자고. 일단 술이나 한잔씩 하지.”

    오 사장의 주도아래 술잔이 가볍게 오고갔다. 음식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 벌써 술잔만 세 번째 오고 갈 때였다. 한참 정치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오 사장의 말을 범휘가 가로챘다.

    “사장님. 천이 형님께서 오늘 중으로 이곳에 있는 녀석들 해산시키라고 했습니다. 정확한 주소를 좀 알고 싶습니다.”

    “어? 그래. 정 실장이 성격 급한 아우를 두셨구먼. 하하.”

    오 사장은 언짢은 기색 없이 호탕하게 웃었다. 주 실장은 천과는 정 반대 성격의 범휘를 보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췄다.

    “숙소는 상세하게 약도를 그려왔습니다. 군부대 작전용과 비슷하게 그린 것이니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주 실장이 범휘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주 실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조용한 곳의 오피스텔 건물이니 크게 소란을 피워도 상관없을 겁니다. 정 실장님과 약속을 드렸듯이 경찰이나 다른 공권력의 개입은 전혀 없을 겁니다. 녀석들 규모가 작다고 우습게보실 일은 아닙니다. 워낙 이곳에 오래 자리를 잡고 있었던 탓에 이곳 타 조직들과도 깊은 유대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딱딱한 일애기에 분위기가 한없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범휘는 좀 전의 쓸데없는 이야기 속 분위기보다 지금이 훨씬 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 실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건네받은 지도의 위치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미 녀석들의 조직 계보는 형님께서 알아보셨습니다. 오 사장님과 주 실장님께서 같이 일했던 녀석들은 그랜드라는 서울의 소규모 조직이더군요. 저희도 애경사 다니면서 안면이 있는 녀석들입니다. 크게 걱정은 안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곳 토박이 식구들도 저희와 인연이 깊은 식구들이고, 형님께서 미리 타 조직 개입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두셨습니다.”

    지지, 않고 말하는 범휘에게 주 실장은 불쾌한 심기를 그대로 들어냈다. 눈치 없는 그도 쉽게 파악 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자신의 발언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빠르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생각을 해내기 전 주 실장의 말이 먼저 튀어 나왔다.

    “오 사장님과 제가 그깟 녀석들 때문에 걱정하신다고 보십니까? 아시다시피 오 사장님은 전직 경찰 간부이셨고 전 현제에도 국가 핵심 조직인 군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겐 돈보다 명예가 더욱 소중하단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명분을 만들어 녀석들을 군에서 쓸어버릴 수 있지만 군이 더러운 깡패새끼들 처리하는데 쓰이는 것을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분위기가 차갑게 굳어갔다. 순간 범휘의 얼굴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켰다. 근육의 긴장을 풀어보려 급하게 술잔을 넘겼다. 한꺼번에 식도를 타고 들어간 술은 얼굴에 뜨거운 열기를 가져다주었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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