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43)

  • 작성일 2009-08-19 15:02:02 | 수정일 2009-08-28 07:16:38
  • “아까 그년같이 장난질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금부터 보여줄 테니까 잘 봐둬. 범휘동생!”

    장부 정리를 마친 그녀가 소리쳤다. 바로 범휘가 들어왔다. 아마도 입금이 끝날 때 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예. 누님.”

    범휘가 보란 듯이 연수의 곁에 떡 하니 버티고 섰다.

    “아까 나간 애 있지? 내일 바로 분당으로 돌려보내. 거기서 천이가 무슨 조치를 취하겠지.”

    “아니요. 형님께서 말씀하시길 여기서 적응 못한 아가씨들은 다른 곳으로 마이킹 받고 내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내일 지방 다방이나 한군데 알아봐서 내려 보내겠습니다.”

    아가씨들의 표정에 두려움이 역력했다. 그래도 룸에서 일했던 아가씨들인데 다방이라니!

    화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다방은 가장 낮은 등급의 직종이었다. 그리고 바닷가가 있는 곳이라면 아가씨들은 치를 떨었다. 거친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가씨들에게 너무나 힘든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지방 바닷가 쪽은 거의 대부분 소도시들이라 경찰과 업주들의 유착관계가 심했다. 빚이 늘어나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그곳에서 공권력의 보호를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그년 도망 못 가게 좀 지키라고 하고.”

    “예. 누님.”

    범휘가 오버석인 행동을 보이며 책상에 놓인 인터폰을 들었다. 그리고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아우! 302호 아가씨 내일 다른 곳으로 보낼 테니까 어디 못 가게 앞에 좀 지키고 있어.”

    범휘의 행동에 아가씨들은 ‘아! 이 사람 우리가 잘못 봤다!’ 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언제나 정중하게 인사 하고 지나가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차안에서 넉살좋은 웃음과 함께 그녀들을 격려하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누님 지시 했습니다.”

    “잘했어. 너희들은 이만 나가봐.”

    아가씨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무실들 빠져나갔다. 사무실에 범휘와 연수만이 남아있었다.

    “휴~ 누님. 이럴 때 보면 정말 무서워요. 역시 프로이십니다.”

    범휘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연수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호호! 동생 역시 압권이야. 완전 다른 사람 같던데?”

    “누님이 그러셨잖아요. 아가씨들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고요. 하하. 참! 그런데 그걸 믿는 아가씨들도 있네요. 세상이 어떤 시대인데 사람을 사고팔아요? 우리 조직 전부 징역가라고요? 하하!”

    “됐어. 적당히 겁줬으니까 앞으로 며칠은 잘할 거야. 그런데 어디로 보낼 거야?”

    “뭐. 일단 분당으로 돌려보내서 형님께서 알아서 하시라고 해야죠.”

    서로의 연기에 만족해하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범휘가 신이나 말을 이었다.

    “누님. 형님께서 조만간 한 번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우리 쌓였던 회포나 좀 풀자고요.”

    흥에 취한 범휘와 달리 연수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표정을 읽은 범휘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세요? 이젠 예전과 같이 지내셔야죠. 그때일은 형님께서 모르십니다. 우리 셋만 입 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다 괜찮은 거잖아요.”

    범휘의 설득에도 근심이 풀리지 않았다. 그녀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과거에서 도망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었다. 잠시나마 ‘잊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곳으로 도망치며 천이에게 화해의 용기를 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영을 혼자 두고 온 것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결코 말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지만, 막상 곁에 없으니 너무나 불안했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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