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10)

  • 작성일 2009-06-22 12:53:36 | 수정일 2009-06-22 12:53:36
  • “하하 장 사장님. 장난이 좀 과한 거 같아요. 박 실장님 보세요.”
    “뭐가? 재밌기만 하구먼. 하하하! 옜다!”
    지폐가 허공에 뿌려졌다. 아가씨들은 범휘의 몸에서 떨어져 허공에 손을 뻗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스피커에서는 흥겨운 음악들이 연신 이어졌다. 모두가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대는 가운데 범휘만이 조용히 앉아 있다. 창석은 계속해서 그를 의식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범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옷을 벗은 건지 입은 건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모두가 더운지 시원한 음료와 술을 찾았다. 테이블은 엉망진창으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술잔이 바쁘게 오고갔다. 아가씨들은 파트너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몸을 비벼댔다.
    한 병, 두병, 세병. 양주병이 늘어 갈수록 사람들의 혀는 제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빈 공간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비로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이. 우리 숙녀 분들 잠깐 나가 있을래? 실장님은 10분 뒤에 들어오시라고 하고.”
    장 사장이 계산을 하려는 듯 아가씨들을 모두 내보냈다. 땀이 식지 않는지 물수건에 얼음을 한가득 넣고 목덜미로 가져갔다.
    ‘그렇게 놀아재꼈으니 힘들기도 하겠지.’
    장 사장을 보며 범휘가 고개를 돌리고 비웃었다. 피곤에 절어 보이는 장 사장은 마지막 술을 제 잔에 가득 따라 천천히 들이켰다.
    “박 실장. 잠깐 우리 사업이야기 좀 해도 괜찮겠지?”
    “예. 그렇게 하십시오.”
    장 사장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창석은 그의 인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범휘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 몸을 틀어 노래방 기계 화면에서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유 사장. 우리 정선 한번 넘어가지 않겠나?”
    이야기보따리가 풀리자 범휘는 자신도 모르게 장 사장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강원도 정선이요?”
    “그래. 정선 카지노. 이번에 말이야 브라질에서 복사카드가 대량으로 들어왔어.”
    “복사카드라 하면......”
    장 사장은 입에서 이야기가 맴도는 것이 참기 힘든지 창석의 말을 잘라냈다.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를 복사한 카드 말이야. 다이너스티 카드를 비롯해서 외국계열 신용카드들이 대량으로 복사되었어. 모두 한도가 3천만 원 이상 되는 카드들이야. 지금 업자들이 500장정도 한국에다가 풀려고 하는데 장당 300만원에 매입이 가능해. 이거 잘만 하면 대박 터지는 거라고.”
    “그런데 정선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어떤 영문인지 몰라 창석이 물었다. 장 사장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이야기 했다.
    “현금화 시켜야 되니까 그렇지. 그 카드들 가지고 있으면 뭐해? 그걸 다 현금화 시켜야지.”
    “정선에서요?”
    “그래. 정선 카지노.”



    2. 지워지지 않는 과거.

    늦은 점심. 햇살을 거부하는 연수의 방은 두꺼운 커튼이 겹겹이 창문을 봉쇄하고 있다. 넓은 침대 옆 탁장에는 우유와 큰 주전자가 놓여있다.
    연신 울려대는 휴대전화의 음악소리가 연수의 단잠을 깨운다. 힘없이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짜증스러운 표정을 보인다. 하지만 핸드폰을 받는 목소리만큼은 기교가 철철 넘쳐흘렀다.
    “어머! 사장님!”
    전화를 받음과 동시에 옆에 놓인 우유를 벌컥 들이킨다. 잠에서 깬 목소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맑은 소리였다.
    “호호 저야 잘 들어왔죠. 속은 괜찮으세요? 호호 그럼 오늘 사장님 속을 화끈하게 풀어드릴 테니 저녁 책임지세요.”
    언제나 그렇듯 우유팩이 비워지자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한참을 떠들던 통화가 끝나자 휴대전화는 찬밥신세가 되어 침대위에 내팽개쳐진다.
    “아! 속이 남아나지 않네.”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그녀의 입에서 한가득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한동안 멍하니 비스듬하게 누워있더니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일어났어?)
    그녀가 아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전해져왔다.
    (응. 그런데 나 집에 어떻게 온 거야?)
    (이 언니가 힘들어 죽는 줄 알았거든? 이것아! 운동 좀 해야겠어.)
    (헤헤헤. 그래. 언니 속 아파 죽겠는데 나와. 속 풀이나 하자.)
    (그럴까? 20분 뒤에 봐.)
    문자를 보내고 난 뒤 침대에서 일어나 힘차게 기지개를 펴보았다. 온 몸의 근육들이 강한 자극을 받으며 짜릿한 전기를 만들어 냈다. 힘을 풀자 온 몸이 축 쳐지며 무거운 돌덩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신거야? 아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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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영이 문자를 확인하고 멍하니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어제 내가 너무 오버한 건가?’
    필름이 끓기기 전 상황을 다시 되짚어본다.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어.”
    정선이야기로 다시 달아오르던 분위기를 술이 대신함으로써 취기가 절정에 달했다.
    오락가락한 정신에 천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아영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겔겔 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보고 싶다고 해서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 그만 잊어.”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술 한 잔 들어가니 또 생각났어. 그냥 보고 싶다.”
    천의 이야기에 아영의 언성이 높아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붉은 얼굴이 더욱 달아올랐다. 피부가 하얀 그녀의 얼굴이 달아오르자 마치 석류의 속살을 보는 것 같았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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