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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의 대한민국.(38)

  • 작성일 2009-08-11 01:56:45 | 수정일 2009-08-28 07:17:08
  • “예전에 참 좋았어요. 형님과 누님과 현수님과 함께 하던 시절이요.”

    감상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지만, 순간 이성이 찾아오며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가 담배를 물었다.

    “그때가 그립니?”

    씁쓸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범휘가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아녜요. 그냥. 저기.”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범휘를 쳐다보며 그녀가 가볍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보였다. 범휘는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말해봐.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이젠 잊힐 법도 하잖아. 우리 모두 상처는 아물었어. 다만 서로가 말을 꺼내길 불편해할 뿐이야. 하지만 우리 둘이라면 괜찮지 않겠어?”

    연수의 담배는 생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범휘가 한참을 망설였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은 이리저리 생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 범휘를 끝까지 보채지 않고 그녀는 기다렸다. 해는 거의 저물어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냥. 그립다기 보단. 그때는 서로가 웃을 수 있었잖아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서로가 웃고 떠들고 어색함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었잖아요.”

    “하~ 그랬던가?”

    연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범휘의 표정도 함께 어두워졌다.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네. 적어도 저는요.”

    “뭐라고?”

    연수는 자신의 귀에 들려온 소리에 대한 확인을 하였다. 범휘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녜요. 누님 저 운동 좀 하고 오겠습니다. 산이라 금방 추워지니 빨리 들어가세요.”

    범휘가 저만치 뛰어갔다. 연수가 그를 바라보며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이곳에 오길 정말 잘 한 건 같다.”










    6. 개시


    “천천히 마음에 드는 옷들로 골라요!”

    정선의 조그마한 시내에 위치한 양복 할인매장이 사내들로 북적인다. 밖에는 큰 현수막으로 ‘1+1! 두벌에 10만원!’ 이라는 문구가 보이고 있다. 사내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양복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창석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북적거리는 사내들을 통제하고 있는 사이 장 사장은 느긋하게 매장 밖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들어왔다.

    “아니야. 당신은 실버 계통이 어울려. 이걸로 해!”

    장 사장이 들어오자마자 양복을 이리저리 자신의 몸에 대보고 있는 사내의 손에서 칙칙한 회색 양복을 빼앗으며 말했다. 바삐 움직이는 창석과는 다르게 장 사장은 여유 있는 웃음으로 천천히 사내들에게 다가가 옷을 골라 주었다.

    “하 실장. 자네는 검성슈트가 잘 어울려. 봐봐. 자세 나오잖아. 안 그래?”

    거울 앞에 서있는 하 씨에게 다가가 검정색 슈트를 몸에 대주며 말했다. 하 씨가 머리를 긁적였다.

    “예, 사장님. 그럼 전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래. 타이는 진한 갈색으로 하지.”

    “예. 사장님.”

    하 씨의 행동은 창석과 장 사장에게 큰 차이를 보였다. 창석에게는 건들거리며 말을 했지만 장 사장에겐 깍듯한 말과 절대적인 복종을 보였다. 그의 이런 모습에는 장 사장의 심리전이 들어가 있었다. 그걸 알기에 창석 역시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창석과 하 씨가 같은 레벨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 해서 약간의 희망고문을 주는 것이었다. 실장이란 같은 타이틀을 줌으로, 그가 창석과 같은 위치라는 것을 각인 시켰다. 그리고 장 사장이 떠날 때 자신이 일만 잘 처리하면 창석과 같이 한자리 꿰 찰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희망을 부여하는 사람에게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봐 유 실장 어때? 3일이나 이곳에 있었더니 몸이 찌푸등해서 죽겠다고. 오늘은 가볍게 한건 해봐야지?”

    창석에게 다가간 장 사장이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리고 시선을 하 씨에게 돌려 조용히 속삭였다.

    “하 씨 저 새끼, 어떤 옷을 입어도 자세가 안나 와. 봐봐. 빈티가 줄줄 흐른다니까. 눈은 완전 독사 같은 눈을 해가지고, 영 맘에 안 들어.”

    “하하 그래도 사장님의 충견이 다 되었지 않습니까.”

    “이봐 저런 새끼들은 나중 가면 대가리만 커질 족속들이야. 그래도 여기서는 이용가치가 충분하니 좀 놔두자고.”

    장 사장은 창석이 하 씨와 동급으로 취급당하는 것에 불만이 표출 될까 걱정이 되었다. 창석이 조용히 말했다.

    “저 새끼 아니었으면 언제 다 이정도 인원을 모아요? 막판에 뒤통수 제대로 때릴 왁꾸나 잘 짜 놓으십시오.”

    “하하 그럴까?”

    그들은 하 씨에게 돈을 제대로 쥐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장 사장을 믿게 만들어야 했다.

    “일단 하 씨랑 여기 있는 녀석들에게 3일 정도는 제대로 돈 빼줘. 그리고 그 뒤부터는 회사에 입금 할 돈을 보름 안에 채워 넣어야 된다고 하자고. 안 그러면 회사 측에서 신용카드들 모두 회수해서 다른 팀에게 넘긴다고 했다고. 그래서 보름동안 긁은 돈은 모두 회사에 완납하고, 완납 끝나고 남은 나머지 카드는 긁는 데로 50% 준다고 하면 될 거 같아. 어차피 3일 동안 꽤 큰돈을 만진 놈들이라 거절하지 못 할 거야. 놀음쟁이들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돈의 유혹이지. 우리가 한 번 이용해 보자고”

    “하 씨가 대가리이니 그 새끼만 잘 요리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도 놀음쟁이들 쉬운 상대 아닙니다.”

    “하하. 이봐. 아무리 마귀 같은 놀음쟁이들이지만 에이급 사기꾼에겐 그저 마귀 장난감 인형이라고. 잘 봐. 어떻게 하는지.”

    장 사장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덧 초라한 행색의 사내들은 말끔한 신사로 둔갑해 있었다. 창석이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두 대의 봉고차에 나눠 실었다. 옷값을 계산한 장 사장이 바로 뒤따라 나왔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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