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 예비후보자> 김종오 광산구청장 예비후보



  • ◆ 한·중 국교수립 하루 전, 조어대에 입성한 최초의 민간인.

     


    1959년 광주에서 태어난 저는 광주일고,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후 대만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대만국립사범대학교와 대만문화대학교에서 중문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박사과정을 채 마치기도 전인 89년 SK Global 전신인 (주)선경에 과장으로 입사하며 기업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르바이트 학생에 불과했던 저는 최종현 SK회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인적네트워크를 인정받으면서 그룹 내 중국전문가로 통했습니다.

     

    SK Global중국팀장 시절인 92년 8월, 한·중 국교수립 하루 전에는 최종현 회장과 함께 북경 조어대(베이징 댜오위타이)에 들어가 전기운 수석부총리를 만나 막후협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국빈관에 입성한 최초의 대한민국 민간인이었습니다.

     

     


    ◆ 한국CDMA 중국진출 기반을 마련한 중국전문가.

     


    95~97년에는 북경 주재원으로 활동하면서 미국의 모토롤라와 경쟁하여 중국이 CDMA기술을 채택하도록 하는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 지도부를 2년 동안 설득한 결과로 한국CDMA 중국진출의 바탕을 마련한 것입니다. 당시 강택민 총서기, 이붕 총리, 교석 전인대위원장, 추가화 부총리 등과 교류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국교 수립, CDMA프로젝트 등 국가 중대사와 그룹의 미래가 직결된 대형 프로젝트들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룹 내에서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정보공유의 자기유혹도 있었지만 타협을 거부했습니다. 때문에 안정된 월급쟁이 생활을 유지하려는 기업관료들에게 한 동안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지만, 철저한 프로근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10여 년 만에 SK그룹 상무의 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SK그룹에서의 활동은 ‘경영 마인드와 리더십 함양의 장’이었고, 한편으로는 중국과 미국 등 세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남북분단 상황에서 ‘통일의 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 내 삶의 첫 번째 전환점 - 행동하는 양심 DJ와의 만남.

     


    1994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었던 DJ는 11월 첫 중국 방문을 앞두고 ‘중국전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피상적인 ‘중국통’이 아닌 중국 실상에 정통한 중국전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SK글로벌 중국팀장으로, 중국 공산당의 고위 관리들과도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었던 저는 배기선 의원의 소개로 3시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뵐 수 있었다.

     


    DJ는 내게 ‘중국의 정치·경제상황’은 물론, ‘중국 고위층과의 대화법, 공산당 지도부와 접촉하는 법’ 등을 물었습니다. ‘중국에도 지식인 계층이 존재하는가?’ ‘조선족은 우리 핏줄로 봐야하는가?’ 등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갔습니다.

     

    저는 당시 ‘대북포용정책’으로 불려졌던 ‘햇볕정책’에 대해서 물었고, 김대중의 해박한 철학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까지 ‘대북·대중관계에 대한 정책적 조언’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아태 민주지도자포럼(FDLAP: 아태재단) 이사와 김대중평화센터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도 이때의 인연이 출발점이었습니다.

     

     


    ◆ 내 삶의 두 번째 전환점 - SK그룹 상무직을 던져버리다.

     


    2002년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기업활동을 접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저는 16년 동안의 해외생활에서 ‘사회발전은 기업의 힘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특히 하버드 Business School AMP(최고경영자 과정) 등 미국생활에서의 경험은 ‘중국’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본 미국경제의 가장 큰 강점은 공정·투명·경쟁의 원칙을 바탕으로 구축된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였습니다. 다수가 참여하는 이 시스템이 이념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움직였던 사회주의를 꼼짝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4대 강국의 세력 다툼 속에서 민족의 생존을 꾀해야 하는 한반도의 환경은 100년 전과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이 시대 어느 누구도 ‘통일과 경제발전의 문제’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유지는 필수적 해결과제였습니다. 평화의 기초 속에 통일에 대한 우리의 지분확대를 위해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 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만 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부와 기업, NGO가 공유하는 가치, 즉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토대로 한 시스템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윤추구를 우선하는 기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 마디로 기업에서 돈 받고 미국 가서 사람이 변해 온 것입니다. 결국 2002년 6월, SK그룹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YMCA전국연맹 이사(평화통일위원), 시민생활환경회의 이사 등 NGO활동과 함께 한양대학교를 비롯해서 조선대학교와 호남대학교에서 교수직으로 재직하며 ‘사회적 자본의 축적과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회적 대타협에서 한국사회 발전의 해법을 찾고자 동분서주했습니다. 물론, 공공정치부문(정부)의 역할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결국 사회자본 축적시스템, 정치와 정부의 효율적인 역할에 대한 고민 때문에 ‘지방선거 출마’까지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16년 동안의 해외생활과 기업경영에 참여했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정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지방자치의 모범, 시민정치·시민주권의 모범을 창출해 보고 싶다는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였습니다.

     

     


    ◆ 내 삶의 세 번째 전환점 - DJ와의 마지막 만남

     


    DJ와의 첫 만남이 그러했듯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제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서거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2009년 6월 25일이었습니다.

    6·15남북공동성명 9주년 기념행사가 끝나고 행사준비위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DJ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민주주의는 입만 벌리고 있으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감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참여를 하고, 자기의사 표현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투쟁만이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기억하십시오”

     


    유언이었습니다. 오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2009년 8월 18일, 김 전 대통령이 떠나셨습니다.

     


    저는 DJ와의 마지막 만남을 아직 끝낼 때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MB정부의 출범으로 ‘민주주의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평화적인 투쟁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지켜내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출마를 최종 결심한 것입니다.

    내 고향 광주광역시 전체면적의 45%를 차지하고 있고, 광주의 관문이자 광주의 미래인 광산구청장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SK그룹의 임원으로써 기업 활동을 통해 산업·경영마인드를 체득했고, 16년 동안의 해외활동으로 글로벌마인드도 갖췄다고 자부합니다. 중국전문가·통일문제전문가로써 김대중 대통령께 정책조언자의 역할도 해왔습니다.

     조선대학교과 호남대학교 등 대학강단에서 후학양성을 위해 노력해왔고, YMCA전국연맹·시민생활환경회의 등의 NGO활동과 한국전력거래소 공기업(한국전력거래소) 감사직까지 수행하면서 정책적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시민과 소통하는 행정’ ‘세밀한 Detail행정’을 펼쳐서 그야말로 ‘제대로 된 지방정부의 리더’가 되고자 합니다.

     

    기필코 자치단체장의 모범을 창출하고, 민주정권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02 학력사항
    - 대만 문화대학교 중문연구소 졸업
                             (박사학위 취득)
    - 대만국립사범대학교 중문연구소 졸업
                             (석사 학위 취득)
    -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 광주제일고 졸업 
     
    03 경력사항
    - 김대중평화센터 자문위원(現)
    - 평동포사격장이전촉구대책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現)
    - YMCA전국연맹 이사(現)
    - 조선대학교 중국학과 초빙교수(現)
    - 호남대학교 중국학과 초빙교수(現)
    - 통일부 통일교육 심의위원(現)
    - 사단법인 시민생활환경회의 이사(現)
    - 에너지일보 이사(現)
    - 법무부 난민지원위인정협의회 민간위원
    - 국민생활체육 광주광역시
       전통무용연합회 자문위원(現)
    - 한양대학교 겸임교수(前)
    - 한국전력거래소 감사(前)
    - 미국 하버드 Business School AMP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중국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 아태 민주지도자포럼
      (FDLAP:前아태재단) 이사(前)
    - SK그룹 상무(前)
    - SK글로벌 중국팀장(前)
     
      
    04 연구논문
    - 중국자본의 북한진출에 대하여
       (중소연구 제30권 제1호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 동양문학과 예술의 인식론
       (중국학보 제53집)
    - 중국철학의 인성론과 문학, 예술과의  
       관계(중국어문학논집 제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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