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는 왜 호남에서 완패했나

  • 호남의 20대 총선결과를 한 마디로 얘기하면 ‘더민주가 국민의당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국민의당은 영악했고 더민주는 깜깜이었다. 종편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방 언론이 반 문 정서를 창조하고 전파하는 동안 국민의당은 더민주를 마음껏 유린할 수 있었다.

    더민주는 호남의 상황이 심각하게 변해가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무지한 판단과 약장수 언론이 쏟아내는 뉴스를 철썩 같이 믿었다. 그래서 호남에서 전혀 존재감 없는 김종인을 호남으로 보냈다. 이것은 국민의당에 호재였다. 국민의당은 또 이런 상황을 이용해  ‘겁먹어서 호남에 못 오는 문재인’, ‘광주민주화에 반한 인물 김종인’으로 더민주의 전, 현 대표를 마음껏 공격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더민주의 판단 미스였다. 체급이 비슷한 선수끼리 붙어야 해볼 만한 경기가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전혀 다른 체급이 맞붙었으니 그 경기 결과는 해보나마나 빤했다. 이런 결과는 호남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모르고 주제넘게 오판한 김종인과 그 외 몇 명의 책임이 크다.

    “조금더 일찍 오지 그랬소”
    “너무 늦게 와 버렸소.”
    이런 호남 유권자의 얘기는 ‘너무 늦게 와서 못 찍어주겠소’라든가 ‘일찍 왔더라면 지지해 줄 수 있었는데.....,’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문재인 호남 방문을 일찍 했더라면 이들이 더민주를 지지했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막상막하의 경기를 벌일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언론은 이번 선거의 패인을 반 문 정서 때문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맞는 말도 아니다. 어느 선거에서나, 어느 후보자에게나 우호적인 유권자와 싫어하는 유권자가 병존하기 마련이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고 40%에 육박하는 콘크리트 표를 갖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박 대통령을 혐오하는 국민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반 문 정서 때문에 호남에서 전패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사실 호남은 반 문 정서보다는 친 안 정서가 많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필자를 제외한 필자의 부모 형제 모두가 안철수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반 문 정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애시 당초 문재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거니와 관심도 없다. 물론 형제들과 안철수를 왜 좋아하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대화는 불가능 하다. 정치 얘기했다가는 형제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에 대한 호남사람들이 우호적인 정서는 지난 대선 때 부터 생겼다. 대선이 한참 무르익을 무렵 팔순을 바라보는 모친이 내게 물었다.
    “안철수 똑똑한 사람이라 하더라”
    “아니, 어떻게 안철수를 아세요?”
    “방송에서 안철수 똑똑하다고 맨날 하니까 알지”
    당시 안철수는 호남 사람들에게 강력한 대선 후보로 각인되었다. 문재인은 야당의 강력한 대선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 거의 내보내지 않아 호남 사람에게 문재인은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어찌 보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에 대한 호남 사람들의 지지는 일부 안철수와의 후보 단일화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여동생은 안철수가 대선 후보로 안 나와 투표를 안 했다고 했다. 그만큼 안철수는 호남 사람들에게  기대치가 높은 정치인이었다.

    호남에서 총선과 지방선거는 가치의 싸움이 아니라 돈과 조직의 싸움이다. 더민주가 부르짖고 있는 ‘경제 민주화’라던가 ‘정권심판’은 노인들에게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래서 후보자는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모리배들과 뒷거래를 통해 조직을 운영한다든가, 아니면 투표일 5일 이전부터 금품 살포를 한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공천을 대가로 광역의원, 기초의원을 선거꾼으로 활용하게 된다. 급부가 주어지지 않으면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호남 선거의 철칙이다. 그런데 더민주는 합법적으로 선거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광역의원, 기초의원의 절반을 국민의당에 빼앗겼다. 더민주가 호남물갈이론을 액면 그대로 믿은 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다.

    유권자의 호남 정치인 물갈이 요구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양식 있는 유권자의 요구일 수 있다. 윤리성 제로, 품격 제로로 타락한 지방정치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 유권자들이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유권자는 극히 소수라는 점이다. 둘째는, 기존의 기득권층에서 배제된 이들의 요구일 수 있다. 이들은 중앙당 차원의 물갈이를 통해 자신들이 기득권층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더민주는 호남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진실 되게 들어 내지 않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청렴하고 능력있는 정치인을 선출합시다”라고 하면 대부분 찬성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배제된다면 모두가 반대한다라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가 문제적 인물이건 부패한 인물이건 말이다.

    호남은 DJ이후 이미 더민주의 대체재를 찾고 있었다. 그 요구는 해가 갈수록 더해져 그 결과물로 드러난 것이 국민의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이다. 이는 지역의 맹주로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을 장기간 행사해 온 더민주에 대한 복수라고도 볼 수 있다. 또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당연한 순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더민주가 외면 받게 된 과정에는 눈을 감은 채 모든 책임을 문재인에게 돌리는 것은 그들만의 패권정당을 만들어 보겠다는 숨은 욕망의 표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국회의원의 권력은 4년이다. 4년 후의 결과는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29%~39%에 이르는 더민주의 지지자들이 여전히 호남에 있기 때문이다.

    더민주는 pk지역에서 그랬듯이 호남 공천도 겸손하게 해야 한다. 지역에 공을 많이 들인 사람에게 공천 우선권을 주거나, 기초 및 광역단체 의원들을 중앙당 차원에서 공정하게 심사해 공천을 주는 방법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 윤승현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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